물김치를 꺼내 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구술 시대를 사는 노모와 깊어 가는 겨울밤
 노모가 이십 분을 말하면,
 알아요 알아요 알아요…
 내가 이십 초 만에 요약을 하고,
 노모가 십 분을 이야기하면 십 초에 또
 뼈를 간추려 드리며


 명주실이 동굴의 깊이를 다 뽑아내듯
 노모는 끝없고,
 마침내 내 요약은 취해 더듬더듬
 아랫배처럼 부풀고
 가방끈처럼 늘어지고,

 밖에서 놀다 온 얘기를 신이 나 늘어놓으면
 얼른 손 씻고 밥 먹자, 줄여 주던 어린 옛날처럼
 노모는 내 횡설수설을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이제 그만 자야지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세상에 노모와 나밖에 없다는 느낌에 밤을 늘여도
 세상에 노모와 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노모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모는 내 말을 가장 오래 들어준 외계인이다
 나는 노모를 평생 말로만 사랑한 지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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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영우 화백

그림=이영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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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짝 재 너머 영천댁이 자꼬 오라 캐서 갔드니만 고마 고추들이 발간 게 참 이쁘드라. 근데 고 길가에 보이까는 갱운기에 깔린 건지 쪼맨한 뱀이 납짝 달라붙어 있는데 아이고 징그러버라 그래 가마이 봤는데 또 보고 있자카이 참 불상키도 하재. 그래 내사 마 니 아부지 옆에 찰싹 붙어 있던 그 지집이 왈칵 생각나드라. 이쁘먼 독한기라, 독하먼 이쁜기라. 니도 빨리 장개를 가야 할 틴데. 참 오늘이 몇 날이고? 느그 누부는 이번 추석에 온다 카드나? 술 그만 묵고 자그라. 초생달 참 밝다 그쟈.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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