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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파동]'계란 안 넣었습니다' 현수막 등장…빵·김밥가게 '생존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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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계란' 배신에 먹거리 불안감 극에 달해
계란 가공식품인 빵·과자도 외면
SNS·현수막에 '안전' 홍보해도 등 돌려…노에그 레시피에 매진


[살충제 계란 파동]'계란 안 넣었습니다' 현수막 등장…빵·김밥가게 '생존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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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김밥 재료로 사용되는 계란이 살충제 검사결과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의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종로의 한 김밥가게. 21일 오전 8시 김밥가게의 아침 풍경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인근에 사무실이 많아 아침마다 김밥 한줄씩 포장해가는 직장인들로 붐볐던 이 곳엔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발자취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이 가게 사장은 "계란 파동이 불거진 후에는 계란을 빼달라는 주문이나 계란 반찬 대신 멸치조림을 달라는 등의 주문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아마도 불안해서 아예 밖에서 먹거리 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안전하다고 해도 믿지 않아 억울하기도 하고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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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빵집의 사정은 더 참담한 상황이다. 왕십리에서 빵 가게를 운영중인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매출 감소를 겪어도 본사 차원에서 위기 대응 매뉴얼 등에 따라 움직이니 상황이 괜찮을 것"이라며 "우리같은 자영업자들은 먹거리 공포 이슈가 불거질때마다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대표 제품이 빵이다 보니 덩달아 불신의 먹거리로 찍혔다. 평소보다 매출이 30%가량은 준 거 같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빵 가게 사장 역시 "안전하다 문구도 내걸었는데, 소비자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다"며 "기다릴 수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 안전한 계란을 구매하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했는데도, 소비자들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여 빵 가격은 못올리고 팔리지도 않고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젊은 빵 가게 자영업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업장에서 사용하는 계란의 농가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인증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 등 고객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사장은 "영세상인들의 안타까운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사먹기는 힘들거 같아요."라는 댓글이 달렸을 때 울고 싶었다"면서 "살충제 계란 파동의 불똥이 너무 거세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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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에그포비아(계란 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란이 없는 레시피를 들고 나와 정면돌파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전국 30여개 영세 빵가게 사장들이 자신의 업체 SNS 계정을 통해 "손님들의 불안을 덜기 위해 우유식빵·타르트·케이크 등 계란이 들어간 빵 대신 스노우볼쿠키·호두강정·천연발효빵 등을 새로 선보이겠다"는 공지를 속속 올렸다.

일부 빵 가게들도 자체개발한 '노에그 발효레시피'로 계란 파동에 대처하기도 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만큼 영세업자들이 생존전략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제과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당장 제품 판매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계란이 많이 함유된 제품 들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제품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계란 비상 재고량을 통해 당장은 제품공급에 문제가 없지만 계란 수급 상황이 악화되면 제품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란을 주 원료로 하는 빵 등의 가공식품의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것은 소비자들의 배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 따른 전수조사 결과 살충제가 검출된 계란을 생산한 농가는 49곳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친환경 인증 농가가 31곳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중 상당수는 전직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 취업을 했거나 직접 세운 민간 업체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규모 영농법인이나 대학 산학협력단처럼 공직자 재취업심사도 받지 않은 기관이 상당수였다. 결국 '인증 마피아'가 식품까지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전체 농가의 55.1%가 친환경 인증을 받을 정도로 '낮은 진입 문턱', 친환경 농장이 인증 기준을 위반해도 1년만 지나면 재인증을 받을 수 있는 '솜방망이 규제' 등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였다.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인증을 받고 일반 계란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친환경 계란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었다. 살충제로 범벅이 된 친환경 계란을 마주한 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대형마트의 계란 매대를 그냥 지나치는 한 소비자는 "건강을 위해 꼭 한개는 챙겨먹어야 한다는 '건강=계란 한알'의 공식을 스스로 깼다. 계란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을 다른 음식을 통해 보완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대형마트 계란 매출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다. 계란 재판매를 시작한 국내 주요 대형마트의 계란 매출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6∼19일 이마트에서 계란 매출은 전주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줄었다.

이마트가 계란 판매대 옆에 '현재 판매되고 있는 계란은 정부 주관 아래 실시된 살충제 검사를 통과한 상품이다'라는 내용의 입간판을 세워놓는 등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불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이마트 관계자는 "계란 매출이 당장 예년 수준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16∼18일 롯데마트 계란 매출은 전주 같은 기간보다 45% 감소했다. 농협하나로마트는 16일 오후부터 정부 조사 결과 안전성이 확인된 달걀 판매를 재개했지만, 최대 매장인 양재점의 16∼18일 계란 매출은 평소보다 40% 줄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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