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나리와 백합/이윤학
애완견이 사력을 다해 멈추지 않고 짖더니 누가 아침을 챙겨 줬는지 심난하게 비닐이 뜯긴 하우스 바닥에 몸을 말고 눈을 붙였다 밤새 술 시중을 들던 마누라가 죽자 영감은 손수 미음을 끓여 채반에 받쳐 들고 방문을 열었다 압축 팩에 넣어 급랭한 고추장 양념이 살아 있는 굽은 뱅어포를 뜯어 오물거렸다 코딱지를 후벼 파다 벼룩신문에 대고 코를 풀기를 반복했다 군둥내가 퍼진 골방 안 골마지가 낀 노인의 눈이 벼름박 가족사진 액자를 희뿌옇게 훑었다 이럴 줄 알았음 조금 잘해 줄 것을 이렇게 훌쩍 떠날 줄 누가 알았어야지 누군들 이렇게 살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죽기 전 마누라가 이복동생이 사는 친정에 다녀와 심은 나리와 백합이 한창이었다 꽃밭 위 토담에 뚫린 벌구멍이 후덥지근한 공기를 뱉고 향기를 흡입했다 바싹 마른 시래기들이 볼멘소리를 웅성거렸다 저 마룻바닥 평상에 홀짝 파인 등을 대고 한나절 향기를 맡았음 오죽 좋아 새끼손가락이 저은 대폿잔을 입에 댄 영감이 복(福) 자 바닥을 드러냈다
■"이럴 줄 알았음 조금 잘해 줄 것을" 왜 그랬는지 몰라. 손 한번 다정하게 잡아 주고 말 한마디 이쁘게 건네고 그럴 걸 대체 무슨 심보로 그랬더랬는지. 봄이면 봄볕 아래 여름이면 나무 그늘 아래 화전은 아니더래도 피래미 부침은 아니더래도 국수 한 사발 나눠 먹고 나비 날고 쑥부쟁이 핀 천변이라도 함께 도란도란 걸어 볼 걸, 왜 그렇게 퉁명스러웠던지 왜 그렇게 모질었던지. 나리와 백합은 왜 또 저렇게 한창인지. "이럴 줄 알았음 조금 잘해 줄 것을" 내 복을 내가 탈탈 털어 마셔 버린 게지. 나 없이 이제야 편안해진 당신, 미안해. 미안하고 미안해.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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