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의 體讀]시험에 든 시험民國
[서평]'시험국민의 탄생'
고려 과거제부터 현대 국가고시까지 1000년의 역사
시험은 느슨하지만 아주 강력한 통치방식 중 하나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최고권력자의 양자(養子)를 명문대에 들여보내기 위해 권력자들이 일제히 나섰다. 국가의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관리가 양자를 두둔했고 이 학교의 총장은 본인의 '고유권한'이라며 편입을 밀어붙였다. 전에 없던 일이라 처리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고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권력의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한 반대세력을 은밀히 조사하기도 했다.
시중 풍문과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일화는 실제 하야한 전직 대통령 이승만과 그의 양자 이강석에 관한 얘기다. 1956년 육군사관학교 1학년을 중퇴한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 편입을 시도하지만 당초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는 이기붕의 아들이었다.
이듬해 이승만의 양자가 되자 술술 풀렸다. 입학시험을 치지 않고 편입이 결정되자 낙하산입학이라고 주변에선 비판했다. 남들이 다 치는 시험 없이 입학한 까닭에 음서(蔭敍)제도의 재현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최근 출간된 '시험국민의 탄생'을 쓴 이경숙씨는 이 사건을 두고 "시험은 최소한 눈에 보이는 성적에 따라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동일한 규칙이 모두에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공정하다는 의미"라며 "경쟁이 어쩔 수 없고 시험을 지원하는 가족배경이 어쩔 수 없다면 적어도 시험결과 앞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하게 같은 규칙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분노가 서려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 이씨는 시험과 인간에 대한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죽 글을 써왔다. 박사논문(일제시대 시험의 사회사)이나 민중교육에 관심이 컸던 브라질 출신 교육학자 프레이리에 관한 논문을 쓰거나 원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등 시험이라는 평가제도가 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굴곡을 겪는지가 주 관심사다. 이번에 쓴 책 역시 부제(한국인의 희망과 좌절의 역사)에 드러나듯 나 혹은 우리의 삶을 북돋아주거나 반대로 옥죄는 시험에 관한 비평이자 역사서다.
저자는 시험의 효시로 과거시험을 꼽는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도 전인 고려시대 광종 때 과거시험을 치겠다고 선언하자 당시 문벌귀족은 위협을 느꼈다. 가문배경 없이도 실력을 따져 관리로 쓰겠다는 구상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과거제는 한 사회 내 지배계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를 위한 교육과정이 생겨났고 합격을 둘러싼 문화도 파생됐다.
양반들은 어린 시절엔 본인의 과거준비를, 나이를 먹어서는 자식의 과거준비를 뒷바라지하는 데 애를 끓여야했다. 지금도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이나 각종 고시에 목을 매는 이가 상당한데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교육이 본디 지향해야할 바를 망각한 채 시험과 함부로 등치시키는 작금의 현실 역시 적폐대상으로 꼽는다.
이강석 사건·무즙파동 등 권력과 결합 땐 부작용
혁신 내세워 또다른 기득권 양산하는 현실 꼬집어
저자는 과거, 즉 시험이라는 제도를 두고 "느슨하지만 실은 강력한 통치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앞서 10여년 전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쓴 표현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시험을 볼 기회를 갖는다는 개방성, 응시를 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당사자 본인에게 있다는 자율성은 시험을 표면적으로 느슨해 보이게 한다.
그러나 누구의 강요 없이도 응시자 스스로 학습에 몰두케 하는 강제성을 띤데다 조선시대 식자층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유학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강력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유용할 수 없는 제도인 셈이다. '권력이 설계한 인간의 역사'라는 가장 앞 장의 제목은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응축하고 있다.
고려ㆍ조선시대의 과거제부터 현대사회의 각종 국가고시, 민간영역의 각종 시험에 이르기까지 1000년이 넘게 이어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스페셜 케이스'로 불린 이강석 사건을 비롯해 1717년 숙종의 대리청정을 반대해 안동과 상주에서 일어난 과거시험 거부, 일제시대 조선인이 관료로 출세할 수 있는 길로 꼽히던 문관고등시험에서 경성제대 출신이 점차 늘어난 일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어느 시대나 시험이 오직 객관적 실력만 묻지는 않는 법"이라며 "시험은 항상 당대의 가치관과 시험설계자가 의도하는 실력을 담고 있다"고 했다.
1965년 전기 중학교 입학시험 때 있었던 무즙파동은 당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이슈로 꼽힌다. 국민학교 6학년이 중학교 입학 때 치른 시험인데, 자연과목 시험에서 정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잘못 처신했다. 당시 18번 문제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엿기름 대신에 넣어도 좋은 것"을 물었는데 출제진이 원한 답은 디아스타제였다. 학생들 가운데 '무우즙', '무우'를 쓴 이가 많았는데 당시 교과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실렸기 때문이다.
문제를 낸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는 복수정답을 인정할지를 두고 갈팡질팡했고 한 문제를 맞고 틀리는 데 따라 학교가 결정되는 학생도 수백 명에 달해 송사로도 번졌다. 이 과정에서 중간에 옷을 벗은 관리도 여럿이었고,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어수선한 정국이 이어지는 와중에 권세가의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뒷구멍으로 들어간 일도 나중에 밝혀졌다.
시험이라는 제도가 야만의 탈을 쓰게 된 건 능력주의, 나아가 서열화와 결합하면서다. 촘촘하게 짜인 서열의 구조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물론 개인간의 관계에서까지 작동한다. 높은 계층의 서열은 특권이 만만치 않기에 역전가능성이 낮다. 반칙을 써도 처벌만 받지 않는다면 용인되는 기류도 있다.
사실상 모든 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수능이나 일제고사가 잔인한 건, 치른 시험의 결과만을 따져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오롯한 인격이나 시험을 치르기까지의 과정ㆍ방법 따위는 묻지 않고 결과만 물을 테니,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각자도생의 주술이 만연해 있다. 저자는 "능력의 내용과 그에 따른 서열을 정하는 이들은 기존의 서열을 고착시키기 위해 서열의 기준도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면서 "부당한 기준을 혁신하면 좋겠지만 혁신하더라도 대부분은 기득권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유리한 지점에 올라서는 경우가 많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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