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자신의 저서 '인코그니토'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그는 책에서 “그 사람에게서 자신과 같은 부분(이름의 첫 글자)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의식적 자기애' 내지는 익숙한 것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안락감'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의 변형일 수 있겠다. 남녀 관계 뿐이겠는가. 자녀에 대한 극진한 사랑 역시 나의 분신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타임지의 수석 편집자이자 작가인 제프리 클루거는 ‘옆집의 나르시시스트’라는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표적인 나르시시스트로 꼽았다. 그는 ‘트럼프 모기지’ ‘트럼프 파이낸셜’ ‘트럼프 초콜릿’ ‘트럼프 생수’ 등의 이름을 붙인다. ‘트럼프 대학’도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막말을 일삼는 것도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본인이 가장 소중하기 여기는 ‘자기’와 결을 달리 하는 타인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 밖에는 대응책이 없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
물론 자기애는 끊임없이 벗어나보려 해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느냐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렇게 말해도 상투적인 소리로 들릴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민주사회에서 공직은 국민의 심부름꾼이거나 머슴이라는 게 본질이다. '나'만 잘 돼봤자 '우리'는 별 볼 일 없게 된다.
제프리 클루거의 말이 와 닿는다. "자신감, 야망, 매력, 자기애는 전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복잡한 교향곡에서 꼭 필요한 화음들이다. 제대로 연주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화음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그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아의 북소리에 지나게 않게 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