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이민우 기자] "이제 진짜, 더 물러설 곳도 없어요."
사진작가의 꿈을 접고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의 길에 들어섰던 하모(34)씨.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작가를 꿈꿨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보며 좌절한 데다가 생계라는 현실적인 벽에도 부딪혔다. 몇 번의 도전 끝에 작가의 꿈을 접고 언론사 사진기자직을 노렸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수많은 '공시생'들이 기다렸던 국가직 공무원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8일 치러지는 2017년도 국가공무원 9급 시험에는 역대 최다인 22만8368명이 지원했다. 합격 정원은 단 4910명. 꾸준히 채용인원이 늘어난 덕분에 경쟁률은 정점을 찍었던 지난 2011년 93.3대 1의 절반 수준인 46.5대 1에 그쳤지만 수험생들에게 바늘구멍인 것은 마찬가지다. 시험장 한 고사실 당 30명 가량이 시험을 보지만 이 가운데 단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한 셈이다.
시험을 이틀 앞둔 6일 점심, 노량진 학원가의 한 뷔페식당은 수험생들로 가득찼지만 말소리는 없었다. 20개 남짓한 테이블 중 2명이 마주 앉은 테이블은 딱 하나. 공시생 대부분 책이나 노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중에 그릇과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 식당 안쪽에서 설거지하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학원가에도 긴장감이 흐르기는 마찬가지다. K학원에서 만난 박훈정(26) 씨는 "이제 체력관리하고 컨디션 조절하는 단계라 새벽부터 나와서 줄 서있고 그러진 않지만 이 시간대면 자습실에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서 있다"며 "일년 공부한 노력이 단 100분, 100문제로 판가름 나니 마지막까지 초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7년 차 수험생 조모(31) 씨는 수염이 거뭇한 얼굴로 학원 건물 뒤편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와 바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전공도 무관하지 않은 터라 나름 자신있었지만 수험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한해, 두해 시험에 낙방할 때마다 공부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모두 악화됐다. 조 씨는 "올해는 꼭 붙어서 당당히 친구들 좀 만나고 싶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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