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의 민낯]고객의 탈을 쓴 "땡깡과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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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대학생자녀를 둔 A씨는 크롬으로 도금된 이너핸들(도어손잡이)의 도금이 벗겨져 자녀의 손가락이 베이자 자동차 제작사에 피해보상으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신체 상해치료비 등 500만 원, 후유장애에 대한 보상금 500만 원, 유명 대학 장학생인 자녀가 사고로 인해 연구 활동을 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손실액 1000만 원 등을 더한 것이다. A씨는 언론이나 소비자단체에 제보하면 자동차 회사의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면서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주장도 했다. 해당 차량제조사는 결국 3개월 동안 1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상담한 끝에 300만원을 건네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자동차온열시트의 과열 때문에 양복바지가 타 허벅지에 1도 화상을 입었다며 1000만원을 요구한 고객도 있었다.

◆ 차량 트집 잡아 터무니없는 보상요구
백화점과 같은 매장이나 식음료에서나 볼 법한 악성 민원인들인 블랙컨슈머가 자동차에도 손길을 뻗치고 있다. 자동차는 대당 최소 천 만원에서 수 억원을 호가하는 데다 자동차의 결함이 인체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자동차의 소비자불만과 피해신고는 여느 업종과 달리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며 중요하게 다뤄진다.


자동차에서의 블랙컨슈머는 대체로 ▲자동차의 결함과 결함에 의한 피해를 과장하거나 ▲자신의 부주의로 생긴 결함을 제조사의 결함이라고 주장하면서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제조사와 대리점은 물론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론과 정부 등 관계기관에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하며 공론화시키는 행위 등을 망라한다. 온오프라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자동차동호회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들은 블랙컨슈머에 유용한 정보를 주고 때론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차량을 일부러 파손시키거나 플래카드 등을 걸어 자동차회사나 대리점, 사법기관 앞에 비치해놓고 항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이다. 출고된 지 16개월이 지난 대형승용차를 인수한 한 고객은 차에 이상이 있다며 2개월 동안 10회 이상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이 고객이 주장하는 하자는 엔진 출력 부족, 엔진과 변속기 이음, RPM 부조, 소음과 진동 등 여러 가지였다. 그는 차량 교환만을 고집하며 항의는 물론 고성을 지르며 센터장 사무실을 점거했고, 시위 도중 팬티만 걸친 채 문신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차량을 점검한 결과 해당고객이 주장하는 하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과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동차 회사 본사에 시위해 차량을 교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 언론제보도 빈번…고소고발 언급도 무기
언론제보를 무기로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자동차의 크롬휠 설계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언론에 제보하겠다면서 5억 원의 돈을 요구했다. 조사결과, 햇볕이 가장 강렬한 오후 2시, 10cm 가량의 높이에서 크롬휠앞에 인화물질이 있다면 화재가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황은 일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소기업 대표는 전 세계에 이런 내용을 퍼뜨리면 국익 손상은 물론 자동차 회사도 엄청난 손실을 입는 만큼 5억원의 보상이 적다고 주장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는 2년 정도 사용한 차량을 인수하고 새 차로 교환해줬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를 활용한 사례가 두드러진다. 임산부인 한 여성은 후진 중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아 차량이 전복됐다며 자동차 회사에 차량 수리비용 1000만원을 요구했다. 주행거리가 약 5000km인 새 차였지만 이 여성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점검결과, 파손된 차량의 브레이크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자 이 여성은 무상 수리가 되지 않자 SNS에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불만 글을 게시했다. 장시간의 협의 끝에 자동차회사는 차량에서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객 관리 차원에서 수리비 1000만원 중 50%를 할인해주고 수리한 부분에 대해선 6개월간 1만km 보증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 9월 발생한 '벤츠골프채 파손'사건 사진(사진=연합)

2015년 9월 발생한 '벤츠골프채 파손'사건 사진(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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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에 결함 확인된 사례도 발생
고객들이 과격한 행동이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동차의 결함을 알리고 이를 시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난 2015년의 유명한 '벤츠골프채 파손'사건이 그렇다. 고객 B씨는 리스로 인도받은 차량이 3차례에 걸쳐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음에도 딜러사 측이 차량 교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전시장 앞에서 2억900만원 짜리 메르세데스 AMG S 63 차량을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부순 후 건물 진입로에 세웠다. 이 차량을 판매한 딜러사가 업무방해로 고소했지만 일부 부담을 A씨가 갖는 대신 신차를 주는 조건으로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이후 정부가 관계기관을 통해 시동꺼짐 현상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수입사측에서 리콜을 결정한 바 있다.


◆ 악질고객 쉬쉬하는 회사도 문제
자동차에서 블랙컨슈머가 계속 문제되는 것은 악질 민원이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자동차와 대리점에서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많다. 자동차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자동차업체와 대리점이 결함을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노력대신 이를 은폐하거나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는 관행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회사에 도움이 되는 화이트컨슈머를 블랙컨슈머로 만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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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국장 출신인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최근 펴낸 '블랙 컨슈머 리포트'에서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블랙컨슈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동차업체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그는 "사고가 발생하자 차량 결함을 이유로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의 약 90% 정도는 자동차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자동차회사는 차에 이상이 없으면 원칙대로 보상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SNS에 글을 올리고 계속 괴롭히면 '고객관리 차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결하는 자동차회사의 행태를 고쳐야 한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블랙 컨슈머는 자생하기도 하지만 자동차회사에서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자동차회사가 원칙을 갖고 있지 않아 인정주의와 적당주의에 치우쳐 블랙 컨슈머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블랙컨슈머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소비자가 아닌 자동차회사"라며 "원칙을 갖고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한다면 블랙 컨슈머가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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