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혁명의 길&장례의 길①]쿠바의 60년 이끈 빅맨, 그 궤적을 찾아서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장례는 수도 아바나가 아닌 동부의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에서 4일 치러진다. 이곳의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되는 그의 유해는 전국을 순회하다 산티아고데쿠바로 간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데쿠바로 가는 길은 서부에 동부까지 쿠바를 관통한다. 이는 60년 전인 1956년 12월부터 카스트로가 게릴라전을 펼치며 수도로 진군했던 여정을 되짚는 것이다. 그는 죽어 60년 전 서른의 나이에 오른 쿠바혁명의 길을 반대로 따라가게 됐다. 이 여정과 60년이라는 세월은 혁명가와 독재자로 갈리는 그에 대한 평가를 상징한다. 혁명가로서 그의 삶은 산티아고데쿠바에서 시작됐고 아바나에서 완성됐다. 그리고 1959년 혁명 이후 2006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넘길 때까지 장기 집권한 그에게는 독재자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
그는 혁명가로 기억될까, 아니면 독재자로 남을까. 그는 젊은 날 자신을 변론하며 '역사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라고 했다. 그의 죽음으로 공은 역사에 넘어갔다. 그가 죽어 되돌아가는 길, 산티아고데쿠바에서 아바나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며 카스트로의 삶을 돌아봤다.
그 마지막 부분을 옮겨본다. "수감생활이란 두려운 협박과 사악한 고문으로 점철돼 다른 사람처럼 나 역시 힘겨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동지 일흔 명을 살해한 저 불쌍한 독재자의 분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유죄를 선고하시오. 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에게 무죄판결을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대로 유죄가 선고됐고 그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한 바티스타 정권은 2년 뒤 그를 사면했다. 사면 뒤 멕시코로 망명한 카스트로가 산티아고데쿠바로 다시 돌아온 때는 1956년이었다. 멕시코에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난 카스트로는 체를 포함한 여든두 명의 게릴라 원정대를 꾸렸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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