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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승진했다는 건 누군가 떠났다는 얘기… 중년 '울컥'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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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은 감자먹방, 갑자기 목이 멘다. 같은 감자 먹는 우린 어째서 70년대로 회귀하는지"

흔들릴 때마다 한잔

흔들릴 때마다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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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서울 피맛골 막걸리 골목을 채웠던 수많은 인연. 그 공간에 울려 퍼졌던 '소음의 소용돌이'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주는 피로회복제였다. 짭조름한 고등어 안주에 찌그러진 술잔이 전부였지만,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세상이 변하면서 골목길은 사라졌고, 술잔을 마주할 친구도 곁에 없지만, 그 인연을 공유했던 이들의 드라마는 여전히 'ON AIR'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 주름은 늘어나 과거의 탄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꼰대' '아재'라는 별칭이 더 잘 어울리는 우리 시대의 중년, 겉으로는 근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린 감성을 지닌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흔들릴 때마다 한잔(도서출판 이다)'이라는 책 제목부터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긴다. 아시아경제 '초동여담' 칼럼 중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내용과 신문에 게재하지 않은 칼럼 등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가족 얘기부터 직장 생활까지 중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연을 수채화 같은 언어로 그려낸 책이다.

'사는 날까지 감자에 경배하라' '이게 다 송해 씨 때문이다' '주책없이 이 나이에 눈물이냐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유'…. 책에 담긴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위트 넘치는 '글맛'에 빠져들다가도 사회적인 메시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영화 마션은 '화성판 먹방'이다.…켁켁, 갑자기 목이 멘다. 감자 때문이 아니다. 남들은 우주로, 미래로 향하는데 우리는 뭐 하나 싶어서다. 같은 감자를 먹는 우리는 어째서 '70년대 회귀'를 시도하는지 서러워서다."
"이 시대 최고의 남편감은 송해야.…송해 씨는 예일대 출신인데다가 영식님이잖아. 예일대는 '예'전 '일'을 그'대'로 한다는 거지.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반찬 걱정까지 덜어주는 영식(零食)님이니 최고의 남편감 아니고 뭐겠어."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할라치면 '노땅'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뒷덜미를 덮치고, 집에서 가족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지르려면 왕따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현실이 서러워 또다시 울컥."

"언론들은 임원 승진 소식만 대서특필한다. 하지만 누군가 임원이 되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리를 물려주고 직장을 떠났다는 얘기다. 수많은 중년이 그렇게 쓸쓸히 정든 일터와 작별한다."

40년이 넘도록 앞만 보며 달려온 삶, 누군가는 남부럽지 않은 명성과 부를 축적했을지 모르지만, 그들 역시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 시절 피맛골 막걸리 친구들이 그립지만, 다들 어디로 갔는지…. 중년들은 오늘도 '외로움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한창때는 미래가, 세상이 사회가 두렵지 않았지만 그런 기백이 무뎌진 지도 오래. 이제는 이를 악물어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 저자가 전하는 현실은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 우리 시대 중년 누구나 공감할 얘기 아닐까.

치열한 경쟁의 칼날에 상처를 입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조기 은퇴'의 막막한 현실에 내몰리고 있지만, 가슴 속 일렁이는 청춘의 기운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 청춘을 완전히 소모시킨 중년의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로켓을 점화해야 한다. 치열하게 과거를 살아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고, 맹렬하게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또 다른 스무 살'을 살아가는 이 시대 중년에게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아직 내일을 사랑할 청춘이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공감의 술잔을 권하고 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다시 청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자고 독려한다. 썰렁한 아재개그 훌훌 벗어 던지고 청춘 감성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나. '흔들릴 때마다 한잔'은 그 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삶에 지쳐 힘겨울 때 내 얘기를 들어줄 그런 친구 말이다.

<이정일 지음/이다/1만3000원>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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