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산증인’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 거행
[아시아경제 박선강 기자]민주화의 산증인이자 광주지역 시민사회 대표적 원로 인사인 故 조철현 비오 몬시뇰 신부가 영면했다.
23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주교좌대성당에서 조비오 신부의 장례미사가 거행됐다.
장례미사는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고별식, 추모식 순으로 진행됐다.
이른 시간부터 사제와 신자, 시민들은 조비오 신부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장례미사에 참석, 성당을 가득 메웠다.
미사에는 사제 260여명과 22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르면서 조 신부의 넋을 기렸다.
추모식에서는 조 신부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소개하는 한편 사제단과 유가족들이 조 신부에게 헌화했으며 신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사제단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조 신부는 1980년 5월 광주의 양심이요. 증인으로 맞섰다. 그 때문에 옥고까지 치르셨다”며 “민주화를 위해 분투했다”고 말했다.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는 추도사에서 “조 신부가 조화보다는 쌀로 받는 것이 좋아 보이더라는 말씀이 있으셔서 이번에 그 뜻을 알렸더니 각계각층에서 4000㎏이 넘는 쌀이 모였다”며 “이 쌀을 교구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여러 어려운 복지 단체 등에 나눠드리게 될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유가족들은 조 신부를 가족으로 모시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런 분을 도저히 떠나 보내기 힘들다. 기둥이 뽑힌 것 같다”고 울먹였다.
조영대 신부는 고인의 조카다.
조 신부의 유해는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노제를 진행하고 장지인 담양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5월 단체 관계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조 신부를 추모했다.
조 신부는 지난 21일 오전 3시 20분 췌장암으로 선종했다.
조 신부는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전남 나주·진도, 광주 계림동 등 성당의 주임신부, 광주전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5·18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해 부조리에 맞서다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로 했다.
2006년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2008년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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