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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단弄단]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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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런 것 같습니다.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금방 스무 가지도 넘게 떠올랐지만, 가야 하는 이유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수에서 함께 일했던, 저를 친형처럼 따르는 잠수사 세 명을 데리고 개인 장비를 챙긴 후 진도로 향했습니다.. 왜 나는 맹골수도로 내려갔을까? 왜 하필 그게 나경수, 나여야만 했을까?” (p.22)
그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데도, 어쩌지 못하는 것, 부탁 혹은 인정(人情) 아니면 신비한 것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시작은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시작이 미스터리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잠줄을 쥐고 단번에 4층 우현까지 내려갔습니다. 어깨와 허리에 두른 납의 무게가 하강 속도를 높여 줬지요. 입수한 이후 아주 잠깐 고개를 들었습니다. 넓게 퍼진 빛이 순간순간 엷어지다가 사라지더군요. 블랙홀에 빠져드는 기분이랄까요.. 빛이 없는 세상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외로움이랄까요.” (p. 65)

그것은 어둠 속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빛도 기대할 수 없는 심해 속으로 혼자 내려가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위험한 어둠’속에서 수색하고 수습하는 것입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이런 바닷속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 아니겠습니까?.. 눈물이 흘러내리니 그나마 확보한 20 센티미터의 시야도 흐려졌습니다. 헤드랜턴만 걱정했는데, 시야를 0에 가깝게 만든 것은 바로 제 눈물이었습니다.” (p. 78)

그것은 직시하기 힘든 것입니다.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눈물이 흘러 내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안전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눈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대면하기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종후의 뺨에 제 오른손을 가만히 댔습니다. 그리고 부탁했습니다.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선내로 진입한 잠수사들이 실종자를 찾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잠수사들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실종자가 돕지 않는다면, 결코 그곳에서 모시고 나올 수 없다고.” (pp. 80~81)

그것은 우리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도와야만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양팔로 허리를 안고’, 어둠 속을 조심조심 헤쳐 나와야만 다른 이들에게 인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수 중 몸 밖으로 완전히 배출되지 않은 질소가 기포를 형성하여 피의 흐름을 방해한 겁니다. 이압성 골괴사(뼈가 썩는 것)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근육이 찢기거나 인대가 늘어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반신 감각이 떨어지면서 소변과 대변 처리가 힘든 이도 있었습니다.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습니다. “(p. 195)

그것은 열심히 하다 보면 몹쓸 병(잠수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스스로 멀리 해야만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잠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없는 폐인이 되어,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온갖 거짓말을 듣고, 갖은 모욕을 받아가면서.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진실을 향한 투쟁’입니다. 인용된 글들은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탁환 작가의 장편 소설 ‘거짓말이다’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 고통스럽고 참혹했던 잠수가, 그 ‘진실을 향한 투쟁’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경수에게는 후회가 되는 일이었을까요?

“(나경수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인) 김관홍 잠수사 덕분에 시야 제로인 심해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웠다. 손을 뻗어 만지면서 머릿속으로 그려 볼 것, 그리고 끌어안을 것.”(p. 386)

아마도 이것이 ‘진실을 향한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윤순환 (주)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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