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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먼지의 밀도 / 한용국

최종수정 2016.08.26 11:06 기사입력 2016.08.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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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그가 평생 벌어 온 것은 먼지였을 뿐
 한낱 먼지들을 모으기 위해서 그의
 운동화는 그렇게 낡아 왔다.

 그의 운동화 끝에 앉은 표범은
 발톱과 근육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기억이란 쓸모없는 것, 어떤 기억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먼지들도
 나름대로 밀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가끔 가방에 귀를 기울인다.
 텅 빈 중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세월은 여백에도 흐름을 부여하는 법
 밀리고 밀려와 닿은 곳에서야
 귀는 예민하게 구름 쪽으로 뻗는다.

 공개적으로 그는 구름을 호명해 본다.
 그러자 물방울무늬 가득한 밤이 와서
 그에게 뿌리내린다.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듯
 벤치 위에 조용히 가방을 베고 몸을 눕힌다.
 먼지로 가득 찬 가방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가방 속에서 속닥속닥 소리가 들려온다. 친구야아 노올자아―. 양파 망으로 얼기설기 만든 잠자리채와 아버지 몰래 광에서 내온 족대를 들고 어린 시인은 친구들과 강둑으로 간다. 강둑엔 쑥부쟁이며 쥐손이풀이며 갈퀴나물이며 싸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위로 말잠자리, 고추잠자리, 꼬마잠자리, 실잠자리, 왕잠자리, 그리고 제비나비, 흰나비, 네발나비, 우와, 사향나비도 날아다닌다. 어떤 친구들은 푹푹 내리쬐는 염천에 홀쭉해진 샛강에서 아까부터 무지갯빛이 한창 맺힌 피라미 떼를 쫓고 있다. 팔월 한낮이 아이들의 낭창한 목소리에 쨍그랑 부서진다. 그 위로 뭉게뭉게 구름들이 하늘 끝 너머까지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시인의 가방 안은 이제 정말정말 새하얀 구름들로 가득하다. 그는 이미 "가야 할 곳"에 와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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