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여름휴가 때 이야기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캠핑을 하기로 했다. 수 년 전, 딸들과 즐겼던 캠핑의 추억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다. 캠핑여행에 딸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들뜬 마음이 사라진 건 한 순간이었다. 캠핑장 예약부터 험난했다. 인기 좋은 자연휴양림은 예약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렵게(눈물 나는 폭풍클릭과 전화통화) 강원도에 있는 사설캠핑장을 예약했다. 요금은 1박에 5만원이다. 여기에 전기사용료는 별도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2만원 남짓이던 요금이 4만원을 넘어 5만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극성수기(7월말~8월초) 때는 6만원 이상 치솟기도 한단다. 수요는 폭증하고 제대로 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적다 보니 매년 이용료는 천정부지로 뛴다.
자연에서 뛰놀고 잠드는 즐거움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의 하룻밤과 비교할 수 없다. 비싼가격에도 굳이 야외취침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캠핑장은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휴가철이라 좀 붐빌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좀이 아니라 황당한 수준이다. 캠핑장은 돈벌이 욕심으로 좁은 면적에 텐트 하나라도 더 들이려 촘촘하게 사이트(텐트치는 공간)를 만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닥다닥 붙은 텐트마다 마찰은 불 보듯 뻔하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건 말건 아이들은 이 텐트 저 텐트를 휘젓고 다니기 일쑤다. 밤새 빔프로젝터에선 영화가 돌아가기도 한다. 이 정도야 웃으면서 넘길 만하다. 그러나 술집의 연장선으로 변한 캠핑장은 가관이다. 늦은 밤까지 술에 취해 고성방가가 끝없이 터져 나온다. 결국 사달이 났다. 옆 텐트의 휴가객이 "캠핑장 전세 냈냐, 좀 조용히 합시다"며 한 소리를 했다. 술에 취한 휴가객의 받는 말이 곱지 않다. 언성이 높아지고 악다구니가 오가다 멱살잡이까지 가는 꼴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이지만 더 심각한것도 있다. 이것저것 고가의 캠핑장비를 챙겨와 자랑을 하는 이들이다. 이왕이면 큰 텐트여야 하고 고급의자와 쿨러(휴대용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 들어 있어야 캠핑이라고 생각한다. 단출하게 캠핑을 즐기는 이들에겐 '없어 보인다' 며 무시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레저 중 하나가 캠핑이다. 캠핑에 푹 빠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 3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캠핑문화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시민의식 부족과 캠핑장 관리부실, 정부의 뒷짐 등 급속 성장한 캠핑문화의 씁쓸한 모습들뿐이다.
꼬박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딸들도 뒤척이며 잠을 설친 모양이다. 자연에서 하룻밤이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은 처음이다. "다시는 캠핑을 안 하겠다"는 딸들의 '폭탄선언'이 쏟아진다.짐짓 못들은 척 텐트를 걷어 서둘러 캠핑장을 떠났다.
값비싼 캠핑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캠핑보다 싸구려 텐트에 라면 하나도 행복했던 오래 전 캠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