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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캠핑, 그 불쾌한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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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벌레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이 정겹다.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장작을 준비한다. 간식을 챙기는 엄마의 손길은 행복이 가득한다. 햇살이 서산으로 꼬리를 감추면 원색의 텐트마다 따스한 랜턴이 불을 밝힌다.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이야기꽃을 풀어놓았다. 부부 앞에 놓인 커피향은 달콤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캠핑이라면 자연스레 이런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캠핑은 이렇게 낭만적이지도 또 여유롭지도 않은 듯하다.
 지난 주 여름휴가 때 이야기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캠핑을 하기로 했다. 수 년 전, 딸들과 즐겼던 캠핑의 추억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다. 캠핑여행에 딸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들뜬 마음이 사라진 건 한 순간이었다. 캠핑장 예약부터 험난했다. 인기 좋은 자연휴양림은 예약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렵게(눈물 나는 폭풍클릭과 전화통화) 강원도에 있는 사설캠핑장을 예약했다. 요금은 1박에 5만원이다. 여기에 전기사용료는 별도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2만원 남짓이던 요금이 4만원을 넘어 5만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극성수기(7월말~8월초) 때는 6만원 이상 치솟기도 한단다. 수요는 폭증하고 제대로 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적다 보니 매년 이용료는 천정부지로 뛴다.

 자연에서 뛰놀고 잠드는 즐거움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의 하룻밤과 비교할 수 없다. 비싼가격에도 굳이 야외취침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캠핑장은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휴가철이라 좀 붐빌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좀이 아니라 황당한 수준이다. 캠핑장은 돈벌이 욕심으로 좁은 면적에 텐트 하나라도 더 들이려 촘촘하게 사이트(텐트치는 공간)를 만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닥다닥 붙은 텐트마다 마찰은 불 보듯 뻔하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건 말건 아이들은 이 텐트 저 텐트를 휘젓고 다니기 일쑤다. 밤새 빔프로젝터에선 영화가 돌아가기도 한다. 이 정도야 웃으면서 넘길 만하다. 그러나 술집의 연장선으로 변한 캠핑장은 가관이다. 늦은 밤까지 술에 취해 고성방가가 끝없이 터져 나온다. 결국 사달이 났다. 옆 텐트의 휴가객이 "캠핑장 전세 냈냐, 좀 조용히 합시다"며 한 소리를 했다. 술에 취한 휴가객의 받는 말이 곱지 않다. 언성이 높아지고 악다구니가 오가다 멱살잡이까지 가는 꼴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이지만 더 심각한것도 있다. 이것저것 고가의 캠핑장비를 챙겨와 자랑을 하는 이들이다. 이왕이면 큰 텐트여야 하고 고급의자와 쿨러(휴대용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 들어 있어야 캠핑이라고 생각한다. 단출하게 캠핑을 즐기는 이들에겐 '없어 보인다' 며 무시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레저 중 하나가 캠핑이다. 캠핑에 푹 빠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 3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캠핑문화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시민의식 부족과 캠핑장 관리부실, 정부의 뒷짐 등 급속 성장한 캠핑문화의 씁쓸한 모습들뿐이다.
 꼬박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딸들도 뒤척이며 잠을 설친 모양이다. 자연에서 하룻밤이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은 처음이다. "다시는 캠핑을 안 하겠다"는 딸들의 '폭탄선언'이 쏟아진다.짐짓 못들은 척 텐트를 걷어 서둘러 캠핑장을 떠났다.
 값비싼 캠핑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캠핑보다 싸구려 텐트에 라면 하나도 행복했던 오래 전 캠핑이 그립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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