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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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태에서 나온 신생아가 벌떡 일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는다. 걸음마다 연꽃이 핀다. 아기가 한손으로 하늘을, 한손으로 땅을 가리킨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온 존 트라볼타처럼. 그리고 외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온 천지에 나 홀로 존귀하도다. 세상에 온통 고통뿐이니 내가 이를 평안히 하리라)." 이를 오만하네 어쩌네 증오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발아래 뭐가 쌓였는지 살필 일이다. 그리하여 똥오줌이 아니거든 감사할지어다.


'디스코 베이비'는 훗날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한다. 태어나 곧 얻은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다음은 법륜 스님의 설법이다. "부처는 '신들이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 자신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인간 존엄의 절대성을 말한 것이다. 또한 '너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해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졌을지라도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움 속을 헤맨다. 그러니 내가 얻은 행복의 세계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불교 사찰은 대개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쉼직한 곳에 깃들였다. 조계사나 봉은사처럼 저자에 자리 잡은 사찰도 그 품에 안기면 편안하다. 대찰은 대찰대로, 작은 암자는 암자대로 그곳에 평화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유럽의 교회들은 대부분 도시 한복판에 있다. 파이프오르간이 바흐의 코랄을 연주하는 인스브루크의 예수회 성당에서도 불교 사찰에서처럼 평화를 느낄 수 있다. 두 팔을 벌린 하느님의 아들이 그곳이 기도하는 곳임을 알린다. 그런데 불교 사찰에는 부처가 한 분만 계시지 않는다.


절에 가서 법당 처마 아래를 올려다보라. 현판에 '극락전'이라고 씌었으면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 머물며 그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모두 극락정토로 이끈다는 구제불이다. 미륵과 더불어 우리 구복불교의 중심에 있는 부처다. '대웅전'이라고 씌었으면 석가모니를 모신 곳이다.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하면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신다. 대적광전이나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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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각각의 부처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손을 보라. 우리 고대 미술의 표현법 가운데 서양미술과 크게 다른 부분이 손과 발의 묘사다. 그러나 불교미술에서는 예외다. 수많은 불화나 불상에서 손과 발에 대한 표현을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부처를 표현하는데 손의 모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처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부처마다 손의 위치와 손가락의 모양이 다르고 각각에 의미가 있어 부처의 정체성을 구분한다.


두 손 다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 중 하나를 맞대 동그라미를 만든 불상, 꿀밤을 때리기 직전이거나 "돈을 가져오라"는 듯한 수인을 보거든 "아, 아미타불이군"하고 알은 체를 하라. 틀릴 확률이 높지 않다. 아미타불의 '9품인'이 모두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고 있다. 석가불의 수인은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 등 다섯 가지다. 이중 손가락 동그라미를 만든 수인은 전법륜인뿐이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과 법계정인이다. 모두 다 알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이 있지 않은가.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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