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로부터 겨우 20여년이 지난 현재 감독당국과 금융회사들이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국책은행이 떠안은 조선ㆍ해운업종의 대출ㆍ보증ㆍ회사채 등을 포함한 부실기업 위험노출액(exposure)이 2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반 은행 등의 50조원을 포함하면 조선ㆍ해운업종에만 위험노출액이 70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부실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그렇다면 이 암운을 걷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연일 기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조기 시행을 외쳐대고 있다. 한국판 양적완화란 무슨 심오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쓰러져 가는 조선ㆍ해운회사를 필두로 부실기업들을 연명시켜주자는 말이다. 물론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이 시장원리에 맞지만, 때로는 선제적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보듯이 실적 부풀리기와 분식회계는 기본이고, 현금배당이나 지원금 횡령 등 각종 탈법행위로 점철된 부도덕한 기업집단에 더 이상의 연명정책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하기에 좋은 나라'를 외치며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펼쳤다. 특히 부실기업이 증가할 때 국책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돈을 퍼주어 그들의 뒷배를 봐줬고, 그로 인해 국책은행에 자본잠식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다시 돈을 찍어 조달해주는 악순환을 되풀이 해왔다. 한국은행이 '화수분'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재원은 결국 국민이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혈세이므로,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 문제에 국회가 배제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돈타령만 하고 있고, 적자경영에 책임지고 물러난 대주주나 임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조조정으로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근로자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부실기업이나 은행들을 위해 구조조정자금 조성을 위한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국민들이 분노한다. 곪은 곳은 빨리 도려내야 하듯이,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거나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에서의 급선무는 그와 같이 곪아 터질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기해 엄중하고 철저한 책임추궁을 하는 것이다.
맹수석 한국금융소비자학회장,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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