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대별로 구역을 정해놓고 폐타이어와 모래주머니로 쌓아올리는 일이었다. 폐타이어는 트럭용을 썼는데, 그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오래 전 '작업의 추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와 함께 벌어진 금융권의 경쟁 때문이다.
"하나만 들어주세요. 우리도 죽겠어요. 할당은 채워야하니까요." 은행 창구만 가봐도 직원들의 고충이 차고 넘친다. ISA는 예금과 적금,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등에 투자하고 5년간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산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심찬 비과세 상품을 탄생시킨 금융당국은 ISA를 '옥동자' '잘 키워나가야할 나무'라고 부른다. 그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해 보인다. 금융권의 과열 경쟁 이면에는 이같은 당국의 성과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도 적잖이 나온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전임 시장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 등 정책 때문에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고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 역시 국민들이 체감할만한 변화는 크지 않다. 그만큼 ISA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의 마케팅으로 고객들이 억지 가입해봤자, 금융사들에겐 '사상누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과정에서 할당에 시달리는 금융 종사자들의 고충은 간과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이 이런 식이라면 강한 반발만 살 것이다.
현대 사회가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적과 배치되서는 안 되겠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를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격장 방음벽을 가장 빨리 쌓아 부러움을 샀던 중대의 방음벽은 작업 중간에 무너져내려 결국 다시 쌓아야 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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