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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단상]효과적인 문화정책을 위한 조건들

최종수정 2016.02.12 10:58 기사입력 2016.02.12 10:58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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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0년 전 일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당시 잡지시장은 1년 이상 생존율이 40%라 했고 '씨네21' 창간편집장이었던 나는 이 주간지가 초기투자비용을 고스란히 적자로 떠안았던 첫 1년 동안 거의 신경쇠약의 나날을 보냈다. 창간초기 매일같이 판매부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저녁에 그들 책상 위에서 노란 바인더에 철해진 판매일지를 꺼내 오늘은 정기독자 신청이 몇 명이고 해약이 몇 명인지 수치들을 몰래 체크해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게 됐을 때 민간기업과는 모든 게 달랐다. 이곳에는 적자와 폐업에 대한 공포가 없고 이 일이 공공에 유익한지만 생각하면 됐다. 다만 기업은 수익을 얼마 냈는지 그 결과가 말을 하지만 공공에서는 얼마만큼 유익했는지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 처음에는 이윤강박이나 폐업공포 없이 일한다는 것이 '땅 짚고 헤엄치기'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의 결과가 숫자로 똑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눈에 확연히 보이는 변화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예산효과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지역의 예술생태계를 지원하고 문화예술 공간들을 운영하며 학교 안과 밖에서 예술교육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문화사업들을 한다. 1990년대까지는 예술인들을 지원하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이 문화정책의 거의 전부였고 문화정책은 행정부에만 있었다. 지금은 전문 예술가들뿐 아니라 시민들 모두가 예술을 누리도록 하자는 정책목표 아래 문화예술을 대중의 일상 속으로 실어 나르는 문화민주주의 시대이다. 복지정책이 그렇듯 문화정책도 볼륨이 커지는 한편 복잡다단해졌고 행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지자체들이 앞 다퉈 문화재단들을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술로 활기찬 서울, 문화로 행복한 시민'이 우리 재단의 모토인데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어떻게 이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예산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그러니까 정책의 연비(燃比)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것이 올해 내가 우리 재단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다. 몇 년의 경험으로 볼 때 그것은 서울시의 정책 및 행정체계에 대한 싱크로율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다시 말해 시의 정책수요에 기민하게 조응하는 것, 그리고 시의 행정시스템을 타고 문화예술적 가치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우리 재단은 여러 가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400여 동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하고 복지사들을 파견해 마을공동체의 중심으로 활성화시키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주민센터에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이 가동할 수 있도록 서울문화재단이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을 것이다. 또한 임대아파트의 공용 공간들에 예술가들이 입주해 커뮤니티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얻고 아파트는 문화공동체로 탈바꿈해 서로 좋은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역사 지하상가에 오랫동안 비어있는 점포들을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저렴하게 임대하면 어떨까. 또는 우리 재단이 최근 몇 년 사이 집중적으로 개발해온 예술치유 프로그램들을 서울시내 공원들에서 시민들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
기업체와도 같은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내 유휴공간을 예술가들에게 무료임대하거나 기업 안에 상주 예술가, 또는 상주 예술단체를 두면 직원들의 창의력 및 활기찬 조직문화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기업로비나 직원식당에 공공미술가게를 설치해보면 어떨까.

올해 초 나는 정책과제니 목표니 하는 말을 빼고 "모두가 각기 작년보다 더 나아지자. 올해가 끝날 때는 지금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돼 있기를 바라보자."는 요지의 신년사를 했다. 올해가 끝날 즈음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 곳곳에서 시민들 생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기를, 시민들이 서울시 문화정책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좀 더 체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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