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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려운 의료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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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의사가 조치를 더 일찍 했더라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대전지법 형사4부(조영범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전문의에게 신속히 연락하지 않아 환자를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의사 이모씨(33) 등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은 이유를 들어 1심의 유죄 판단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전공의 1~2년차이던 이씨 등은 2010년 9월 당직근무 중 식도정맥류 환자인 40대 여성을 진찰하는 과정에서 혈액 채취 등 기본 검사만 하고 전문의를 즉시 호출하지 않았다.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진 환자는 뒤늦게 '식도정맥류결찰술' 시술을 받았으나 과다출혈로 숨졌다.

'신속히 시술을 했다면 환자가 숨지지 않았겠는가'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다. '만약'을 전제로 한 '가능성'의 다툼에서 의사들이 이긴 셈이다.
이는 의료 과실을 둘러싼 소송에서 환자(피해자)가 의사의 잘못을 온전히 입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민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김종원 부장판사)는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사지마비 증상이 생긴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환자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판결은 의사의 배상 책임을 20%로 제한하는 데 그쳤다.

"수술의 난이도와 의료행위의 특성 등에 비춰, 책임을 의료진에게만 부담시키는 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의료소송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의료행위의 전문성이나 각종 의학적 변수 등을 모두 고려하기 시작하면 사실 의사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의사의 책임을 온전하게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대법원이 집계한 2010~2014년 의료소송(민사) 1심 현황을 보면, 해마다 1000여건의 사건이 처리됐으나 이 가운데 환자 측이 '전부 승소'한 경우는 겨우 수십건에 불과했고, 특히 2011년엔 1052건 중 '전부 승소'는 15건에 그쳤다.

변호사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의료행위의 적절성을 따질 때 법원이 자문을 구하는 곳이 의료기관이라는 점을 꼽는다. '같은 의사끼리'라는 의사집단의 정서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의사 이모씨 등의 재판에서 재판부는 의사의 판단 권한과 범주를 따지거나 환자를 살릴 가능성 등 쟁점을 다룰 때 대한의사협회나 가톨릭대학교병원 등의 감정 결과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법원 입장에선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환자와 의사 간 의료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으로 여기는 인식은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소송까지 가기 전에, 의사의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지정된 기관에서 조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른바 '신해철법' 또한 이런 배경에서 발의됐다.

현재는 의사가 거부하면 조정을 시작할 수 없다. '신해철법'은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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