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정규직이 사라진다
10년 후 정규직이 사라진다. 관련 통계를 보면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기겁할 이런 전망이 당장 현실이 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불거지지 않았던 고용과 노동 문제를 둘러싼 저간의 논의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극단적인 얘기도 아주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627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4000명(3.2%) 증가했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2.5%로 0.1%포인트 상승했다. 정규직은 1304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34만1000명이 늘었다.
통계만 놓고 보면 정규직이 사라진다는 주장이 웬 말인지 싶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테두리는 점점 헐거워지고 있다. 헐거워 진입이 용이해야 할 텐데 쉬 튕겨 나가기만 좋아졌다. 고용노동부가 30일 공개한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등 양대 지침에 대한 정부안을 보면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게 된다. 또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등에 '사회통념상' 고용관계 지속이 어려운 저성과자 해고 사유 근거를 마련해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지침들이 확정되면 국회 처리 없이도 현장에서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정규직을 쉽게 내보낼 수 있게 되면 그 자리는 누구로 채울까. 비용절감을 제1원칙으로 내세우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비정규직을 찾게 된다. 경기 악화, 실적 부진 등으로 신입사원에게도 희망퇴직을 신청 받는 기업들도 있는 마당에 인력에 대한 투자는 허망한 기대에 불과하다. 급기야는 기업이 필요할 때 언제나 불러 일을 시킬 수 있는 고용 형태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이를 '제로아워 계약(Zero Hour Contract)'이라고 한다. 최소한의 근무 시간과 조건을 정해놓지 않은 노동계약 형태다. 이미 영국 등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2014년 영국 국가통계청에 따르면 영국 내 58만3000명이 이 계약조건하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영국 노동자의 2%에 해당한다. 기업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쓸 수 있어 좋지만 노동자는 저임금으로 일하며 고용주가 전화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야 한다.
최근 출판된 '10년 후 세계사(구정은·정유진)'는 이 같은 제로아워 계약과 '호츨 노동자'의 삶이 우리가 10년 뒤 맞닥뜨릴 풍경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구직자들은 '제로아워' 일자리도 마다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조직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노동조합도 없어 회사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썼다.
경기불황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조건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정확이 관통한다. 이 책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노동 시장에 들어가지만 IMF 이전의 아버지 세대처럼 안정되게 평생 근무할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계약직,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 등 예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여러 형태의 일자리들이 앞으로 노동시장에 뛰어들, 그리고 지금 뛰어들기 시작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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