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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215억원 기부금에 225억원 세금

최종수정 2020.02.11 14:00 기사입력 2015.12.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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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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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을 내는 사람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원리는 간단하다.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을 민간인이 주머닛돈을 털어 했으므로 기부자의 세금을 면해 준다는 것이다. 논리상 맞다.

그런데 기부금 215억원(현금 15억원과 회사 발행주식 90%인 200억원 상당)을 공익재단에 줬더니 세금 225억원을 납부하라는 고지서가 나왔다고 한다. 기부를 안 했으면 당연히 세금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무슨 이런 세법이 있나 하여 해당 조문(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을 찾아 보니 나름 사정이 있긴 있다. 공익법인이 내국법인 A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5%(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를 초과해서 기부를 받았다면 그 초과분에 대해 공익법인이 증여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왜 이럴까? 재벌기업들의 부당한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재벌기업 회장 갑이 공익재단 B를 만들고 자신의 자녀를 이사장으로 앉힌다. 그 뒤 갑이 갖고 있는 A주식을 B에게 기부하면 결국 갑의 자녀들은 세금 한 푼 안 내고 B를 통해 A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래서 공익법인에 증여세를 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갑이 자녀들에게 주식을 직접 증여했을 때 부과되는 증여세와 균형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도 아닌 성실한 중소기업가가 이런 세법 조항의 심오(?)한 내용을 모른 채 오롯이 어려운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나라의 기둥이 되도록 하겠다는 순수한 뜻으로 자기 회사의 주식 90%를 공익재단에 기부했다면 이 조항에 따라 증여세를 내야 하나.
과세관청은 세법 규정에 따라 공익법인에 대해 증여세 140억원을 부과했고, 이를 납부하지 않자 기부자에게 연대 납세의무를 부여해 공익법인의 세금 140억원에 가산금을 더한 225억원을 내라고 통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15억원을 기부했더니 225억원짜리 세금고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기부자는 억울해서 소송을 제기했고 제1심인 지방법원에서는 해당 세법 조문의 입법취지 등을 감안한 합목적성 해석을 해서 납세자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런데 2심인 고등법원에서는 세법조문을 문자대로 해석해 과세관청의 손을 들어줬으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지하철 표지판에 '애완견을 데리고 탈 수 없다'는 팻말이 있다고 하자. 그럼 애완견이 아닌 다른 것(예: 고양이)은 다 탈 수 있다는 의미인가. 아닐 것이다. 표지판의 의미는 승객에게 피해를 줄 것을 염려한 것이다.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문제의 기부금 조항도 마찬가지다. 재벌의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렇지 아니한 경우, 이 조문의 입법취지 등을 감안해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무튼 머리 좋은 판사들의 판단이 서로 어긋날 정도이니 대법원 결정 또한 기부자가 승소한다는 보장은 없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 역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한 가지 방안은 있다. 과세관청이 기부자의 출연금과 그 출연금을 받은 공익재단의 사용처를 다시 한 번 조사해 기부자 출연금이 기부자나 기부자와 특수한 관계가 없는 자에게 지급됐다면 과감하게 당초 증여세 부과 결정을 취소하는 것이다.

이 세법 조문의 취지는 재벌기업의 부당한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것인데, 문제가 된 기부금 사건은 이와 관련이 없으므로 국세기본법 제18조에 규정된 세법해석 기준인 합목적성 원칙에 따라 적극적으로 기부자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신의성실원칙(제15조)에도 부합한다.

성실한 기부자의 억울함과 고통의 해결을 사법부에만 맡겨두는 것은 책임 회피다. 국세청장이 증여세 부과 결정을 취소한다고 해도 이를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성실한 공익법인이 활성화되도록 세법규정도 개정돼야 한다. 과세권은 힘 있는 자에게는 엄하게 적용돼야 하지만 성실한 납세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 세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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