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정준모씨 "진품맞다" VS 유족들 "명예훼손 법적대응"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로 일한 적이 있는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가 언론을 통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자 천 화백의 유족 측은 명예훼손이라며 법적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반발했다. 미인도를 둘러싼 24년에 걸친 위작 시비는 가닥이 잡히지 않은 채, 취약한 우리나라 미술 감정 제도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위작 시비는 1999년에 다시 한 번 불거졌다.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권 모씨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위조했다는 시기는 미인도가 미술관 소장품이 된 시기와 맞지 않아 위작의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인도가 천 화백의 그림이라는 주장에는 불명확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가가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고, 당시의 그림 감정 체계가 불완전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천 화백의 유족들은 9일 정준모 씨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화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 씨는 미인도 논란이 시작된 시기가 1991년 4월이지만 미인도는 1990년 금성출판사의 한국현대미술선집 11권에 수록됐고, 위조범 권씨가 원래 천 화백은 미인도 눈동자에 금분을 칠하지만 자신은 노란색을 썼다고 증언했지만 이는 작가가 금분 안료를 썼던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미인도는 위작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천 화백 생전 교류가 있었던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지금 세태가 참 유감스럽다. 고인을 또다시 궁지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지금은 제대로 진실을 가려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맞다. 미술계 내부의 자정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림으로 분석하지 않고 시점 등등 운운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김윤섭 미술평론가 역시 "현재 개인들의 의견들만 회자되고 있는데 이제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전문가들, 유가족들,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함께 모여 미술계 내부에서 진위를 가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미술감정에 대한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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