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많이 진 것은 가계만이 아니다. 정부도 부채가 많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가채무가 530조원이 넘었고 여기에 공공기관 부채가 역시 520조원을 넘어서 총 공공부문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70%에 이르고 있다. 정부도 가계도 빚이 많다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은 부채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저절로 나온다.
한국 경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요인은 국가부채나 가계부채보다는 기업부문 부채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부채는 국채를 발행해 메우기 때문에 장기적인 현상이다. 가계부채 역시 정부가 수습해 나갈 여력이 있다. 반면 기업부채는 대내외적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단기적이고 급격하며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한계에 부딪히고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재무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접어든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가 갑자기 악화될 경우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부실이 다른 기업과 산업으로 파급되며, 기업 부실이 곧바로 금융기관 부실로 연결돼 금융긴축(credit crunch)이나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 뿐인가. 기업들이 부도를 내기 시작하면 실업자가 양산되어 가계부채까지 한층 더 악화될 것이다.
장기적 내수불황에 더해 갈수록 깊어지는 수출 부진, 여기에 미국의 연속적 금리인상이나 글로벌 위기요인이라는 삼박자가 겹칠 경우 체질이 약한 사람이 먼저 바이러스균에 노출되는 것처럼 부채의 덫에 빠진 한국 경제가 예기치 못한 급박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기업부문 위기대응 체제에 나선 금융당국은 차제에 금융산업의 정비에도 손을 써야 한다. 은행의 주 수입원인 순이자마진(NIM)이 극도로 낮고 바젤Ⅲ가 도입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외부충격이 발생할 경우 은행을 통한 주거래기업 관리는 비효율적이다. 대기업 집단에 대한 채권 은행단이 수십 개나 돼 이해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문제기업에 추가 대출을 해줄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부채가 좀 많더라도 사업 내용이 우량한 기업을 즉시 인수해 회생시킬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활용한 대형 사모투자펀드(PEF)의 육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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