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축구와 사람 ⑨] '땜빵 감독'의 최후
[아시아경제] 2014년 7월 10일 오전 10시, 홍명보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가슴이 아프다. 지난 월드컵을 출발하기 전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약속했지만 실망감만 드려 죄송하다.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수도 있었고, 저 때문에 많은 오해도 생겼다.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1990년 처음으로 대표 팀 선수로 발탁돼, 국가대표로 24년 간 생활을 했다. 오늘로서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도 동반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는 '땜빵 감독' 최강희를 '땜빵'하는 '땜빵 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하고 마친 셈이다.
조광래가 떠나고 슈틸리케가 부임하기 전에 대표 팀을 맡은 두 감독, 즉 최강희와 홍명보는 비정상적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는 공백을 비정상적으로 메우기 위해 발탁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내가 보기에 최강희는 정말 하기 싫었던 것 같다. 전북 팀을 맡아 좋은 결과를 내고 있었고, 대표 팀을 맡아 월드컵에 진출하면 본전이고 실패하면 비난을 들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명보는 "까짓것 못할 것 없지"라는 심정으로 팀을 맡았으리라고 짐작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고, 조광래-최강희가 마무리하지 못한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라는 과업을 맡을 적임자가 당시로서는 딱히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국가대표 선수 또는 지도자로 일 해온 만큼 사명감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절실함에서, 또는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이라는 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는가 짐작해본다.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점에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의지와 무관하게 그릇된 판단도 한다.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자로 잰 듯 명철하게 삶의 과정을 수행해 나간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시련은 외부에서 오기도 하고, 내면에서 싹을 키우기도 한다. 대개 큰 시련에는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원인이 된다. 홍명보 정도 되는 인물을 한국 축구가 일찍 버린 카드로 만들면 손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대표 팀 감독을 뽑지 못할 정도로 우리 축구계가 황폐했다는 뜻은 아니다. 2015년 9월을 기준으로 볼 때도 국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우수한 지도자가 없지 않다.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같은 우수한 지도자가 대표 팀을 못 맡아 보고 지도자 커리어를 끝내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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