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연구의 태동 동백기름

1932년 연구의 태동 동백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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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서성환 선대 회장은 회사의 공식적인 모임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이 말을 했다.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존경심을 표현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뿌리'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창업자의 굳은 결심이 담긴 고해성사였다. 실제로 회사의 그 '뿌리'는 동백기름이다.

1930년대, 당시의 여인들은 절개가 느껴지는 듯한 날 선 가르마를 중심으로 좌우 머리를 빗은 후 비녀를 찔러 쪽머리를 두르는 것을 미(美)의 기준으로 삼았다. 거기에 참빗에 머릿기름을 발라 윤을 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여겼다. 눈처럼 하얀 자태를 드러내는 가르마와 윤기가 흐르는 쪽머리가 미덕이었던 시절, 서성환 선대 회장의 어머니인 윤독정 여사는 바로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주는 동백기름을 팔았던 것이다. 터를 잡은 곳은 개성이었다. 개성은 고려왕조 때부터 시전(市廛)이 만들어지면서 독특한 상업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무엇보다 깐깐한 성품으로 '신뢰’를 돈보다 더 귀히 여기며 상인의 도(道)를 만들어 낸 '개성상인’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1966년 세계 최초의 인삼화장품 ABC인삼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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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윤독정 여사는 동백나무의 열매를 곱게 빻아 기름틀에 넣은 후 압착해서 추출한 기름을 결이 고운 베로 한 번 더 걸러낸 동백기름을 손수 만들어 팔았다. 이 동백기름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여인들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당시 동백기름 외에도 아주까리기름, 수유기름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건너온 왜밀기름 등 수많은 머릿기름이 있었지만, 동백기름만큼 그 윤기를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동백기름을 제조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짜는 방법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므로 냄새와 색깔이 고운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이 있어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좋은 동백나무씨를 얻는 것이 관건이었다.


윤 여사가 천 리 길도 더 되는 곳으로부터 동백나무 열매를 얻는 데에 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좋은 원료가 최고의 품질을 만드는 첫 번째 비결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업의 번창을 위한 전략만은 결코 아니었다. '최고의 품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상인이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도(商道)라는 것을 이미 개성상인들로부터 몸소 배웠던 것이다. '최고의 품질’은 곧 고객과의 보이지 않는 '신뢰’임을 그녀는 굳게 믿었다. 얼마 후 그녀의 동백기름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사업은 화장품 제조로까지 발전했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2008년 세계 최초 쿠션 파운데이션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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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상점'이라는 간판까지 내걸며 사업이 활발한 궤도에 오를 무렵, 서성환 선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윤독정 여사가 서성환 선대 회장에게 맡긴 것은 다름 아닌 원료를 구해 오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서성환 선대 회장은 개성에서 시전이 가장 활발했던 남문거리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당시 남문거리는 서성환 선대 회장의 놀이터요, 학교요, 연구실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개성상인들의 상도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몸소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 남문거리로 몰려오는 수많은 원료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향을 맡으며 최고의 원료를 가려내는 안목과 요령을 터득했다. 서성환 선대 회장이 남문거리를 드나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그의 몸과 마음에는 어머니 윤독정 여사의 동백기름 속에 담긴 깊은 철학이 자연스레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느끼는 이 자부심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남문거리를 한 번씩 밟을 때마다 서성환 선대 회장은 하나씩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착실하게 개성상인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서성환 선대 회장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품질에 대한 고집스런 철학을 머릿돌로 삼아 마침내 아모레퍼시픽을 창립했다. 그 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은 1945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으로 징용을 갔던 서성환 선대 회장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개성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 대륙에서 넓은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문물이 뒤섞여 세계와 교류하는 모습을 보게 된 서성환 회장은 '아시아의 미’로 세계와 소통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후 몇 달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서성환 회장은 기존의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 그 간판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PACIFIC)’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이름에는 태평양 너머 서구 세계까지 아시아의 미를 전파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동백기름에서 쿠션까지"…아모레퍼시픽의 70년 원본보기 아이콘
동백기름의 철학은 아모레퍼시픽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오히려 그 뿌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그 옛날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모레퍼시픽을 시작하면서 서성환 선대 회장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다름 아닌 '품질’이었다. 그것은 개성상인들의 오랜 전통이 몸에 밴 버릇처럼 그에게서도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서성환 선대 회장의 경영 철학은 당시 소위 날림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냈던 다른 회사와의 그것과는 엄격하게 구분됐고,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표'를 붙인 화장품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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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그룹은 한국 최초 식물성 포마드 'ABC포마드', 세계 최초 인삼을 원료로 한 'ABC인삼크림', 쿠션 카테고리를 창조한 아이오페(IOPE) '에어쿠션' 등 지난 70년 동안 '최초', '최고'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5일 창립 70주년을 맞은아모레퍼시픽그룹이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세우고 걸어 온 여정에는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 위한 끈질긴 연구와 투자, 그리고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싶었던 창업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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