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해로한 부인을 보내는 자리에서 나온 그의 말, 그를 둘러싸고 펼쳐진 풍경들은 새삼 이 예외적이며 역설적인 인물이 한국 정치,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게 된다.
그는 영원한 조연이라고 불리지만 어느 주연보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주역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 그의 역설이 있는데 그러나 그의 진짜 역설은 다른 데, 아니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저 1961년 5월 이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그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역사'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그는 실은 역사를 산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삶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살았던 것은 거의 늘 역사의 표면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살아남았다. 여기에 그의 성취가, 그의 승리가 있었다. 그러나 또한 거기에 그의 실패가 있었다. 그가 불운했다면, 대통령이 못 돼서가 아니라 끝내 자기 삶의 표면 아래 진짜 역사로, 자기 몸을 찢으며 그 속으로 내려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자신의 삶이 역사 속의 한 부분이 아니라 역사가 자신의 삶의 장식물이었다. 그에게 역사는 '이야기'로, '드라마'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자신은, 또 많은 이들은 그가 정치를 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게 그의 삶은 일종의 생존기와 적응기, 역사를 쓰고 싶었으나 역사의 뒷얘기꾼이 된 한 인물의 인간극장으로 비친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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