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만났던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한 기자는 "세계 각지를 다녀봤지만 서울 사람들처럼 바쁜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활기차 보이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던 그의 말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특히 이곳 미국 포틀랜드에서 지낸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서울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다르게 흐르는지 실감했다. 가끔 서울에 있는 지인과 통화할 때면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때로는 공간적 거리감보다 더 큰 시간적 거리감을 실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을 적용해보자면 한국 사람들, 특히 서울 사람들의 시간은 더욱 빠듯하다. 도시가 크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시간개념은 강해진다고 한다. 뉴요커들의 시간개념은 나이로비 시민의 그것보다 훨씬 분명하고, 특히 '시간은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사용하는 데 더 신중해지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면서 바쁘게 활동한다. 런던 시민의 보행속도가 리마 시민의 그것보다 빠른 이유도 여기서 찾는다. 서울의 도시 크기와 발전 속도, 인구밀도 등을 감안하면 서울시민은 '심한 시간 가난'에 시달린다고 진단할 수 있다.
시간과 돈 사이의 불균형이 더욱 커지는 것도 문제다. 미국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05년 사이에 고졸 직장인의 여가시간은 주당 8시간 늘어난 반면 대졸 직장인의 그것은 오히려 6시간 줄었다고 한다. 즉 교육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을수록 일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지식근로자 또는 경영진의 일은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간과 소득이 모두 풍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2015년 새해가 밝아온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또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서 새해를 맞는 우리 모두의 '시간개념'이 조금은 무디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의 풍요를 물질적 풍요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싶다.
이은형 美 조지폭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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