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상품교역을 놓고 벌이는 FTA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의 불법조업 문제를 다루기엔 한계가 있다며 그나마 우리측 주장을 관철시켜 이같은 성과(?)를 냈다고 했다. 다른 나라들에서 선언적 의미에 그쳤던, 불법 어획물에 특혜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못박은 것은 한중 FTA가 유일하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양국이 서해의 조업질서 확립에 협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때마다 우리 정부는 해경의 강력한 단속만 강조할 뿐 근본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해경이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조차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것을 염려해 중국정부에 대놓고 항의하기를 꺼리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는 서해 어민들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인천 백령·대청·소청도 어민 30여명이 “중국 어선 때문에 못 살겠다”며 정치권과 중앙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자리였다. 이들이 생업을 놓고 육지로 뛰쳐나온 이유는 그간 NLL 인근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이 이달 초부터는 700여척가량 선단을 이뤄 백령도와 대청도 코앞까지 내려와 불법조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곽윤직 중국어선 불법조업 대책위원장은 “수십년간 이 일을 하면서 중국어선 수백척이 몰려와 조업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어민들이 깔아놓은 그물과 통발을 망가뜨려 조업을 나갈 수도 없고, 어쩔수 없이 남아있는 어구마저 철수시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꽃게와 홍어가 제철인 때 우리 어장을 중국에 빼앗긴 어민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중국 어선들을 막아달라는 이들의 울분을 정치권과 정부가 귀담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정부는 당장에 어민들의 피해 상황부터 조사한 뒤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근절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서로가 ‘오랜 우정을 나눈, 좋은 동반자’ 관계라고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훨씬 친밀해진 한중관계 분위기에서 박 대통령이 못 나설 것도 없다.
불법조업으로 인한 피해 책임은 1차적으로 중국 어선에 있지만 단속 등의 조치가 미흡하거나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한국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의 외면이 언제까지 계속 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혜숙 기자 hsp0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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