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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부처의 퍼머머리(219)

최종수정 2014.11.18 07:14 기사입력 2014.11.1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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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머리를 퍼머해준, 그리스인들. 그들이 그저 인도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불상을 제작해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불상을 제작한 그들은 이미 불교에 귀의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기원전 3세기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박트리아왕국이 태어났다. 그리스인들이 만든 나라이다. 100년쯤 뒤에 이 나라 사람들은 힌두쿠쉬산맥을 넘어 간다라로 들어온다. 이곳을 지배한 왕이 메난드로스왕(밀린다왕)이다. 불교경전에도 등장하는 왕이다. 이 왕은 중인도까지 들어왔다. 밀린다왕은 불교 승려인 나가세나(나선스님)과 인터뷰를 한 뒤, 불교신도가 되었다. 그리스의 왕이 불자가 된 것이다. 이 왕을 조각한 화폐에는 불교의 삼보가 등장한다. 또 왕이 죽은 뒤 부처처럼 탑을 건설하고 그의 뼈를 나눠 보관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얘기다.

기원전 1세기 중엽, 테오드로스라는 사람이 계곡에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고 대중의 평안을 기원한다고 새겨놓은 글자가 발견되었다. 그리스인이 불탑을 만들었다는 이 각자는, 그가 불교를 수행하고 전파하는 승려였음을 암시한다. 테오드로스는 그리스인 스님인 것이다. 인도에는 그리스왕국이 패망한 뒤에도 여전히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상업을 하거나 기술자로 활약했으며 지방영주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생겨난 불교도들이 부처의 상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2세기 준나르의 동굴에서는 판잡지방에서 온 그리스인 무역상인이 부처를 모신 흔적이 있고, 나시크 굴에서도 부모를 위해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글을 암벽에 새긴 그리스인의 이름이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부처의 상을 만드는데 기술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 신심을 조각에 아로새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처의 곱슬은 서양의 겉멋이 거기 올라앉은 것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문명에 경도된 서양의 정신이 경배를 섞어 말아올린 흔적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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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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