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박트리아왕국이 태어났다. 그리스인들이 만든 나라이다. 100년쯤 뒤에 이 나라 사람들은 힌두쿠쉬산맥을 넘어 간다라로 들어온다. 이곳을 지배한 왕이 메난드로스왕(밀린다왕)이다. 불교경전에도 등장하는 왕이다. 이 왕은 중인도까지 들어왔다. 밀린다왕은 불교 승려인 나가세나(나선스님)과 인터뷰를 한 뒤, 불교신도가 되었다. 그리스의 왕이 불자가 된 것이다. 이 왕을 조각한 화폐에는 불교의 삼보가 등장한다. 또 왕이 죽은 뒤 부처처럼 탑을 건설하고 그의 뼈를 나눠 보관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얘기다.
2세기 준나르의 동굴에서는 판잡지방에서 온 그리스인 무역상인이 부처를 모신 흔적이 있고, 나시크 굴에서도 부모를 위해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글을 암벽에 새긴 그리스인의 이름이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부처의 상을 만드는데 기술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 신심을 조각에 아로새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처의 곱슬은 서양의 겉멋이 거기 올라앉은 것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문명에 경도된 서양의 정신이 경배를 섞어 말아올린 흔적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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