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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오욕의 역사도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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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1989년 오늘은 친일 연구에 한 평생을 바쳤던 재야 사학자 임종국씨가 사망한 날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친일’을 거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눈총을 받거나 혹은 사상이 불온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 십상입니다. 그런데도 임씨는 평생을 친일 연구에 바쳤습니다.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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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먹었고…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그는 총독부 관보나 복사가 어려운 매일신보에서 필요한 것들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쓸 정도로 자료 수집에 집착했습니다.
"내가 왜 친일파냐"며 항의하러 왔다가 임씨가 내놓은 자료 앞에 그냥 돌아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인이었던 그는 작가 ‘이상’에 빠져 평론집 ‘이상 전집’을 내놓았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닥쳐 도피와 자기분열로 치달았던 이상의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유명 작가들의 친일 행적을 보게 되고 이때부터 그는 친일에 대한 자료조사에 빠져듭니다. 해방 후 당시 내로라 하던 작가들이 일제하에서는 대부분이 ‘내선일체’를 예찬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친일문학론’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아버지 임문호씨의 친일 연설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학자적 양심으로 아버지의 친일행적까지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500부를 찍은 초판이 다 팔리는 데는 13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나마 1000부는 일본에서 구매했습니다. 재야 사학자의 ‘이단’적인 책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죠.

혹자는 그럴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굳이 옛 것을 끄집어 내서 무엇하겠느냐고. 굳이 오욕의 역사를 밝히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그러나 그에게는 오욕의 역사도 역사였습니다. 아니 한국 근·현대사에는 오히려 더 중요한 역사였습니다.

‘친일’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줄곧 우리 사회에 뒤꼍에서 음으로 양으로 우리를 규정한 힘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료로 가득한 방, ‘벼락이 떨어져도 자신의 방을 떠날 수가 없다’고 했던 임종국씨는 하루 10시간 씩 글을 쓰고 자료 정리에 매달렸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돈벌이도 되지 않은 일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묵묵히 하다 60세의 나이로 잠들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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