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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32)]"쉰"혼부부 열정과 냉정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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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최근 친구의 빙부상에 조문을 갔다. 몇 개월 전에는 이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돌싱이 된 뒤 재혼을 했는데 새장인이 돌아가셨다. 친구들이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빙부상도 잘 안갔는데 이제는 재혼한 친구의 빙부상도 간다. 물론 다른 친구들 경조사를 내일처럼 챙기는 벗이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별 일'은 별 일이다. 친구 아들과 부인의 딸이 인사를 한다. 부인이 "아빠 친구 분들이야"라며 딸을 인사시킨다. 무척 고마와 한다. 남편한테 잘 할 거다.
 나이가 오십 줄에 들었는데도 결혼 얘기, 여자 얘기가 화제다. 알콩달콩한 50대 '쉰'혼부부의 모습이 화제를 이쪽으로 몰았다. 깔깔대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죽이기도 한다. 상가에 모인 10명의 면면이 다채롭다. 결혼을 중심으로 여섯 종류로 분류된다. 유부남, 기러기, 이혼한 돌싱, 상처한 홀아비, 재혼남, 법무부 총각. 참 다양한 인생들이다. 호모와 양성애자는 없는 듯 하다. 나한테 추근거린 놈은 없다.

 결혼은 무엇일까? 희망으로 시작해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해 하기도 한다. 실패할 경우 다시 희망을 찾는다. "그게 결혼이야(That's marriage)." 대이빗 핀처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에서 여주인공 에이미 던(로자먼드 파이크)이 남편 닉 던(벤 애플렉)에게 한 답이다. 닉은 "지금까지 서로에게 분노하고, 서로를 조종하려 하고, 서로에게 상처줬을 뿐이잖아"라며 헤어지자고 소리친다.

 "그게 결혼이야"는 돌직구다. 우리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라고 말해왔다. 친정 어머니가 딸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파트너에게, 부부 간의 갈등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왜일까?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고 생활의 시작이기 때문일까. 진짜 그게 결혼이고 남들도 같은가. 잘 모르겠다.
 100세시대에는 또 다르다. 워낙 오래살기 때문에 가족관계나 인간관계가 예전과는 같을 수 없다. 역학관계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관계가 예전엔 주류였다. 에이미와 닉의 관계는 남녀 간의 관계가 역전된 사례다.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에 사는 조각가다. 그는 키프로스 여인들을 음탕하다고 싫어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상아로 조각하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에게 "조각상 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빈다. 소원을 알아챈 여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피그말리온은 사랑스러운 여인 갈라테이아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남성이 설계한 대로 사는 게 사랑스런 여인이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신적인 존재인 피그말리온에게 갈라테이아가 어떻게 대했을까. 돈을 못벌어 와도, 바람을 피워도 고분고분 했을까. 피그말리온은 항상 능력있고 가정적인 남자였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갈라테이아도 사람이 됐는데 항상 순종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갈라테이아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둘 중 하나가 죽었을 것이다. 그때는 평균수명이 40도 안될 때다. '오래 오래'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서 옛날 얘기는 오래 오래 행복한 게 가능했다.

 에이미는 닉에게 요구한다. 결혼을 결심했던 그 순간의 사랑스러운 남자로 평생을 살 것을. 갈라테이아는 20년만 견디면 됐지만 닉은 60년을 변하지 않고 견뎌야 한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도망도 못 간다. 오죽하면 자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네 두개골을 깨고 뇌를 꺼내보고 싶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안다. 설명하면 재미없어진다. '나를 찾아줘'는 비정상적인 부부의 모습 속에서 일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많은 남자들은 피그말리온을 꿈꾸며 닉으로 살고 있다.

 압제와 권태에서 탈출을 꿈꾸는 친구 한 명이 "자동이혼제를 도입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결혼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이혼하자는 거다. 체면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는 부부가 많다. 자동이혼제를 도입하면 긴 인생에 여러 가지 새로운 기회를 자연스럽게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친구들이 농반진반으로 이러쿵 저러쿵 아이디어를 내서 자동이혼제의 뼈대가 완성됐다. 결혼 뒤 20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이혼하도록 법을 고친다. 재산도 반으로 나눈다. 그래도 살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동사무소에 가서 연장신청을 하면 최장 이십 년을 더 살게 한다. 대선 때 공약 아이디어로 주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다가 술이 좀 과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낮에 받은 전화가 생각난다. 재혼전문회사 매니저다. 재혼관련 콘텐츠를 보려고 신상정보를 입력했는데 연락이 왔다. 돌싱이라 했나 보다. "선생님 정도면 잘 팔려요. 예쁘고 돈 많은 40대 돌싱들 많아요. 한 번 만나보세요."

 그런가. 자신감이 생긴다. 흐흐흐 한번 만나 볼까.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자랑했다. "나 재혼시장에서 잘 팔린다는데." "나한테 잘 해야 돼, 알았지!" 호탕한 지, 쪼잔한 지 모르겠다. "어이그, 나야 좋지 이 중생아." 아내가 되받아 친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면 이게 문제다. 자기 처지를 곧잘 잊는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깨니 돌아누운 아내의 뒷머리가 보인다. 나는 무슨 말을 한 것이고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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