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나주 잠애산 아름다운 용머리 금동신발의 비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마한 호족의 백제風 금동신발, 남하한 백제왕이 선물했을 수도
고분 위 지었던 나주임씨 정자 덕에 일제시절 도굴꾼도 미처 발견 못해


정촌고분 현장

정촌고분 현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원본보기 아이콘

[전남 나주 =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영산강 북쪽에 자리한 전남 나주 다시면 복암리 잠애산. 참나무 숲으로 이뤄진 이곳 산사면에는 삼국시대 이 지역 최대 규모의 방대형(네모난 평면에 윗면이 평평한 형태) 고분이 남아 있다. 최근 이 고분 안에서 용머리 장식을 한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앞서 확인된 마한·백제권 금동신발 16점에 비해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면서도 형태적으로 완벽해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3일 복암리 고분군과 인접한 정촌고분 발굴현장을 찾았다. 이곳에 서면 확 트인 시야로 드넓은 평야와 영산강이 내려다보인다. 이 고분 주변 정촌(丁村)마을 주민들은 예부터 '칠조산'이라 불리는 7기의 고분이 이곳 복암리 평야에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 논밭에 남아 있는 고분 4기는 지난 1998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정촌고분에는 과거 봉분 위에 세워져 있던 정자(亭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산강 주변의 이들 마한·백제 시대 고분과 출토유물은 서해안 연안 해로와 강줄기를 따라 교역의 요지가 됐던 이 지역의 과거 위상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특히 나주 지역의 마한 토착세력들이 당시 인접해 있던 백제, 신라, 가야국 등으로부터 직접 지배당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문화들을 수용해 왔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정촌고분 안에서는 5세기 후반 한성백제 시기부터 6세기 사비백제 시기까지의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 금동 신발부터 금제 귀걸이 등 장신구, 마구, 화살촉, 토기, 석침(石枕·돌베개), 개배(蓋杯·뚜껑 접시) 등이 나왔다.
 
엑스레이로 찍은 금동신발 바닥 모습. 연화문 위아래로 도깨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엑스레이로 찍은 금동신발 바닥 모습. 연화문 위아래로 도깨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원본보기 아이콘

특히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등에는 용머리 장식이 달려 있다. 용머리 장식은 왼쪽 신발만 남아 있는데 오른쪽에 있던 똑같은 장식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신발 바닥 중앙에 장식된 연꽃 문양이다.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했고, 중앙에 꽃술을 새긴 솜씨가 뛰어나다. 연꽃 문양 앞뒤로는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으로 형상화된 도깨비 문양이 묘사돼 있다. 이 같은 연화문과 도깨비 문양은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김낙중 전북대 교수(고고문화인류학과)는 "1995년 평야에 위치한 복암리 대고분군에서 물고기 달린 금동신발을 발굴한 이후 19년 만에 이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이라며 "용머리 장식이 있는 신발도 유일하고, 부식 없이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오동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금동신발은 백제가 남하하면서 기존 마한의 토착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국가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며 "마한 유력자를 회유하기 위해 선물한 하사품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독자적으로 강성한 힘을 지녔던 마한의 토착세력이 금동신발을 직접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류.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류.

원본보기 아이콘

마한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뿐만 아니라 가야, 신라, 왜와도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되는 다양한 유물들도 만날 수 있었다. 금동신발의 연화문이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은제탁잔의 문양과 비슷한 것처럼 재갈과 고리칼, 토기 등은 남원 두락리, 월산리의 가야계 석곽을 비롯해 경주 황남대총 등에서 확인된 유물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몸통에 구멍이 뚫려 있고 입이 벌어져 있는 모양을 갖춘 토기는 왜(일본)에서 유행했던 토기와 유사하다.

현재까지 고분조사를 통해 나주 일대 출토된 인골은 총 43구다. 정촌고분에서는 1호석실에서 1구가 나왔고 복암리 대고분군에서 23구, 영동리 고분에서는 17구 등이 확인됐다. 이 인골들은 마한사람을 복원·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정촌고분에서 멀지 않은 복암리 대고분군. 현재 4기가 남아있다.

정촌고분에서 멀지 않은 복암리 대고분군. 현재 4기가 남아있다.

원본보기 아이콘

정촌고분 주변은 과거부터 나주 임씨 집성촌이 마을을 이뤄왔다. 고분 위로 임씨 가문 소유의 정자가 있어 일제강점기 때 도굴의 위험을 피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금 정자는 없어졌지만 고분에서 출토된 기왓장들과 기둥의 흔적들이 정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남아 있는 고분의 크기는 짧은 변 37.3m, 긴 변 40.0m, 높이 11.6m 규모다. 하지만 고분의 정상부가 후대에 일부 훼손됐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원래 고분의 높이는 13m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 안에는 돌방무덤(석재를 쌓아 만든 무덤), 돌덧널무덤(지하를 파서 직사각형 덧널을 짠 무덤), 옹관묘(항아리를 맞붙여 관으로 쓰는 무덤) 등 9기가 확인됐다. 이 중 3기의 돌방무덤에 대한 내부 조사가 올해 들어 시작됐다. 금동 신발이 나온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백제권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나주(전남)=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