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자 후배 차를 얻어 타고 경기도 어디쯤 다녀오는 길도 그랬다. 운전대를 잡자마자 입이 거칠어지고 눈썹이 팔자로 꺾이는 것을 보자니 안전띠를 부여잡고 어서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자동차 2000만대 시대,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이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드리워진 그늘이 이처럼 소모적이라니. 정부는 도대체 뭐 하길래 교통 인프라가 이렇게 개판이냐고 성토하려다가도 서둘러 입을 틀어막는다. '그래? 옳다구나' 하면서 정부가 세금을 또 올리면 어쩌란 말인가. 담배에 이어 자가용에 세금폭탄을 쏟아부을까봐 심히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선량한 국민들은 닥치고 운전대만 잡을 수밖에.
자동차 2000만대 시대를 일조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전전력 부지 매입에 10조5000억원을 베팅했다는 뉴스의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소주 88억병, 담배 42억갑, 커피 25억잔, 결정적으로 국민 1인당 21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렇다면, 그리하여 정말 정 회장이 21만원을 전 국민에게 나눠줬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머리띠 매고 '국산차 사랑하기, 현대차 애용하기' 궐기대회에 참석했을 것,이라는 망상에 잠시 빠져본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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