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뮐러[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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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스포츠 강국이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6위(금 11개 은 19개 동 14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6위(금 8개 은 6개 동 5개)를 했다. 동·하계 종목 모두 강하다. 국력에 못잖은 스포츠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독일이 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자랑했다. 5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에스타디오 마라카낭에서 열린 대회 8강 경기에서 프랑스를 1-0으로 이겼다. 2002년 한일 대회 이후 4회 연속 4강 진출을 이뤘다. 월드컵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독일은 이번 대회 포함 열두 번이나 4강에 올랐다. 월드컵 4강의 단골손님이다. 통산 우승은 3회로 브라질(5)과 이탈리아(4)에 뒤지지만 4강 진출 횟수는 일곱 차례의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앞선다.

한국은 이런 독일과 2002년 한일 대회 준결승에서 만나 팽팽히 맞섰다. 후반 미하엘 발라크에게 결승골을 내줘 0-1로 졌지만 경기 초반 차두리의 패스를 받은 이천수의 슛이 들어갔으면 이후 경기는 어떻게 펼쳐졌을지는 알 수 없다. ‘2002 한국’은 홈의 이점이 없지 않았지만 ‘2014 한국’보다 확실히 강했다.

아무튼 독일은 축구를 비롯해 동·하계 거의 모든 종목에서 고른 실력을 보이고 있다. 독일이라고 하면 축구가 떠올라 성격이 매우 다른 야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2005년 이후 네 차례 유럽야구선수권대회에서 모두 4강에 올랐다.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바로 다음 수준이다.


독일 근대 스포츠의 뿌리는 깊고 든든하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에 패배한 독일(프로이센)에서는 철학자 요한 피히테가 국가를 구제하는 방법으로 교육을 이용하도록 관계 기관을 설득했다. 체육은 국력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나라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지적 교육과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독일 체육에서 가장 국가적인 경향을 제시한 이는 ‘독일 체조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얀이다. 체조를 단지 체력을 키우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겼다.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을 바탕으로 태어난 독일 체조와 스웨덴 체조, 덴마크 체조 등은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 등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보급됐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은 1871년 독일(프러시아)과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국민들이 좌절감에 빠져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앙숙인 독일과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에서도 축구처럼 승패를 주고받았다. 독일은 이번 대회 승리로 프랑스와 월드컵 역대 전적에서 2승1무1패로 앞섰다. A매치 전적에서는 9승6무11패로 바짝 따라붙었다.


프란츠 베켄바워[사진=아시아경제 DB]

프란츠 베켄바워[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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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강한 프랑스를 재건하기로 마음먹은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피아 유적 발굴로 고대 올림픽의 참모습을 알게 되자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드는 것보다 세계 평화를 생각하게 된다. 쿠베르탱은 1892년 ‘스포츠에 의한 청소년들의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며 올림픽의 부흥 즉, 근대 올림픽의 창시를 제창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성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는 쿠베르탱과 재무 담당인 어니스 캐로 두 프랑스인 외에도 이탈리아, 그리스, 영국, 러시아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노르웨이-스웨덴왕국, 보헤미아공국 등 유럽 여러 나라 귀족들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단 독일은 라이벌 프랑스를 의식해 ‘올림픽 운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에서 그들은 14개 출전국 가운데 하나로 참가, 미국과 그리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스포츠 강국의 탄생이었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 홍보 차원에서 유치한 1936년 베를린 대회 1위를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기 전 모든 여름철 올림픽에서 10위 내에 들었다. 또 1956년 멜버른, 1960년 로마,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에 단일 독일로 출전해 각각 7위와 4위, 4위를 차지했다. 놀라운 사실은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부터 1988년 서울대회까지 동독과 서독이 따로 출전했는데도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서 서독이 8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두 나라가 모두 5위 안에 들었다는 것이다. 1991년 통일 이후에도 독일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모두 6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겨울철 대회는 여름철 대회보다 더 성적이 좋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와 1998년 나가노 대회,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통일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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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수영 6관왕인 크리스틴 오토,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2연속 챔피언인 카타리나 비트(이상 동독), 1974년 서독 대회에서는 선수로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프란츠 베켄바워(서독)는 독일이 낳은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다. 토마스 뮐러는 이번 브라질 대회에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 이어 또다시 득점왕에 오르면 월드컵 사상 첫 2연속 득점 1위의 영예를 차지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1970년 멕시코 대회의 게르트 뮐러와 2006년 독일 대회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두 선배를 제치고 독일인 슈퍼스타 계보 앞쪽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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