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7월의 호국인물에는 김재현 기관사, 6ㆍ25전쟁영웅에는 김용배 육군 준장, 독립운동가에는 최중호 선생이 각각 선정됐다.


30일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6ㆍ25전쟁 당시 병력수송 중 전사한 김재현(1923.9∼1950.7) 기관사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44년 3월부터 대전철도국 소속 기관사로 재직했다.

6ㆍ25 개전 초기인 1950년 7월 19일, 대전시가 북한군에 함락되던 날 그는 대전에 남아있던 미군 제24사단 윌리엄 딘 소장과 아군을 구출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딘 소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도왔던 군정 장관이자 한국 지형을 잘 아는 유일한미군 지휘관이었다.


당시 대전은 국군이 이미 철수하고 대전으로 향하는 모든 철로는 북한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김 기관사는 미군 결사대 30여명을 기차에 태우고 적탄 속을 뚫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적탄에 결사대원 27명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귀로에 올랐다. 기관차가 대전시 판암동 근처 적진 속을 달려 돌아올 무렵, 김재현 기관사 또한 전신에 8발의 총상(가슴 관통상)을 입고 전사했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 완수를 위해 운전대를놓지 않았던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2년 순직비가 건립됐고, 1983년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됐다. 미국 국방부도 그의 공적을 기려 2012년 6월 26일 특별민간공로훈장을 추서했다.


이어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김용배 육군 준장(1921.4∼1951.7)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소위로 임관해 1950년 7월 충북 음성의 동락리 전투에서 6사단 7연대 1대대장으로 적 연대를 격파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동락리 전투는 6ㆍ25전쟁 개전 이래 국군 최초 승리로 꼽힌다.


김 장군의 부대는 1950년 10월 6일 38선을 돌파 후 그해 10월 25일 압록강변에 태극기를 꽂아 한반도의 북쪽 국경선에 가장 먼저 도달한 최선봉부대가 됐다. 김 장군은 그러나 1951년 7월 12일 7사단 5연대장으로 양구 토평리지구에서 중공군 제5군대 예하의 1개 연대와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전개하면서 작전을 지시하던중 가까운 거리에서 작렬한 적의 포탄에 의해 전사했다.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최중호 선생은 김구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선생은 1891년에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양산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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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11년 일제가 항일운동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테라우치총독 암살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이어 1919년 3ㆍ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한 선생은 김구 선생의 추천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무국에서 활동했으며, 박은식 선생이 주도한 항일신문인 사민보 발간에도 동참했다.


1926년 선생은 상해 인성학교 학감으로 취임해 한인동포 자녀들의 인재양성에 주력했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결성에 참여해 임시정부와 어려움에 처한 한인 동포들을 지원했다. 특히 선생은 학창시절부터 독립운동의 스승으로, 선배로, 동지로 김구 선생과의특별한 인연을 이어갔으나 일제의 고문 등 옥고생활 중 얻은 폐병이 악화해 1934년 별세했다. 정부는 1977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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