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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발목 잡은 교원노조법 ‘독소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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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전교조, 합법노조 아니다” 판결…다른 노조는 실업자도 조합원 가능한데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결국 교원노조법에 담긴 ‘독소조항’ 때문에 다시 비합법 시대로 돌아가게 됐다.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반정우) 판결은 교육계는 물론 노동계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조합원이 6만명에 이르는 거대 노동조합이다. 논란의 쟁점은 9명의 해직교사를 전교조 조합원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사학 민주화 운동을 하다 해직됐다고 해서 조합원 지위를 박탈할 수는 없다는 게 전교조 판단이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계속 조합원으로 둘 경우 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 자체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계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은 일개 노동조합의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희망했지만,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법이 문제가 됐다. 당시 정부는 교사와 공무원의 노조활동 보장을 약속하며 국제사회의 긍정적 기류 변화를 유도했다.

실제로 노사정협의회는 교원노조 합법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 마련에 나섰고 1999년 7월1일 전교조는 합법화됐다. 1989년 출범 이후 10년 만에 합법노조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전교조 발목 잡은 교원노조법 ‘독소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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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교조는 법원의 이번 판결로 다시 법외노조 시절로 돌아가게 됐다. 교육현장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교조는 노조로서의 합법적 지위와 교섭권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대법원 확정 판결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만만찮은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해직자의 노조 결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1998년 노사정 합의를 비롯해 국제기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처사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진후 의원은 “교육부는 1심 패소의 후속조치를 시도교육청에 바로 시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시도교육청이 반발하면 특정감사 및 고발 등의 수순이 진행될 것이다. 신임 교육감 취임을 앞두고 교육부 장관 또한 교체하는 시점에 교육수장들의 임무는 학교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수장들이 자리잡은 후 잘 상의해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6만명이 넘는 조합원을 지닌 전교조가 9명의 해직교사 조합원 가입 여부 때문에 비합법노조로 취급받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없지는 않았다. 그게 가능하다면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강수를 뒀고 법원에 의해 인정받았다.

노동부가 강수를 둔 배경에는 현행 교원노조법의 허점이 담겨 있다. 교원노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교원노조는 교원을 조합원으로 두도록 돼 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교원의 의미와 관련해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한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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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직교사는 전교조 조합원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해고된 사람으로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교원으로 본다는 조항이 있다.

해직교사가 됐다고 해서 당장 교원 지위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며 중노위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얘기다. 중노위 판단 이후에는 교원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노동법 조항은 또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12조 (신고증의 교부) 조항을 보면 행정관청은 설립신고서 보완을 요구했음에도 기간 내에 보완하지 않을 경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다고 돼 있다.

노동조합의 지위에 지장을 주는 사항이 발견되면 행정관청은 보완을 요구할 수 있고 노동조합이 보완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설립신고서 반려를 통해 합법적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게 노동부 논리인 셈이다. 6만명의 조합원을 둔 노동조합을 9명의 조합원 자격 문제로 합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게 타당한 것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노동부 손을 들어줬다. 교원노조법의 조합원 자격기준이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른 노조와의 형평성 때문이다. 이번 법원 판결을 통해 몇 명의 조합원 자격 문제로 전체 노조의 합법적 지위 박탈을 가능하게 하는 선례까지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이나 결정이 결과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악용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합법노조를 비합법노조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교원노조가 아닌 다른 노조의 경우 법원은 조합원 자격에 관해 유연한 입장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강영구 변호사는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면 실업자나 구직자, 해고자 등도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면서 “교원노조법 2조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받아 왔는데 이번에 이를 근거로 전교조를 합법노조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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