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까치, 소, 개, 나무, 집, 가족, 해, 달, 산, 호랑이, 학…. 고(故) 장욱진 화백(1917~1990년)의 그림 속엔 민화에 등장할 법한 일상적이고 토속적인 도상들이 대부분이다. 그림의 느낌은 마치 아이들의 낙서나 동화 같다. 유화물감으로 그렸지만 수묵화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물감을 묽게 해 모필(毛筆)로 단숨에 처리해서다.
원근이 존재하지 않는 평면적 화면 위엔 천진난만한 동심과 함께 정신성을 중시한 동양적 회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삶 역시 은둔과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는 도교적 세계를 추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술 평론가들은 "원시미술이나 한국의 민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ㆍ서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고 양진영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켰다"고 그를 평가한다.
미술관 내부에는 집과 아이들, 새와 같은 단순한 소재로 작가 특유의 소박미가 넘치는 작품 80여점을 전시돼 있다. 장 화백의 대표 명작 60선과 유족들이 기증한 벽화 2점 및 유화 19점 등이다.이 외에 유족을 포함한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기증한 작품은 먹그림 40여점, 채색화 80여점, 판화 20여점 등이 있는데, 이는 순차적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될 계획이다.
전시장 안에는 작가가 평생 모티브로 삼은 '나무'와 관련된 그림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1954년 작 '수하(樹下)'란 작품은 나무 아래 누워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작가 자신이 그려져 있다. 나무 위로는 새들이, 가까운 곳에 깔린 외길엔 개 한마리가 등장한다. 쓸쓸하고 조용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화면 위 멀리 어둠 속에 묻힌 속세를 상징하는 듯 집들로 가득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작가는 지금은 남양주에 편입됐지만 양주의 '덕소'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12년간 자연과 벗하며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삶을 살았다.
초기작에서부터 덕소시기(1963~1975년)까지의 작품들에는 주로 기다림과 외로움이 묻어난 정서가 나타난다. 반면 수안보(1980~1985년)와 용인(1986~1990년)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풍류적인 정서가 강하다. 1988년에 그려진 '기도하는 여인'에는 파란색과 녹색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온몸으로 기도하며 날아오르는 여인의 모습을 담아냈다. 기증 벽화 두 점 중 하나인 1964년 작 '동물가족'은 덕소 시기의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화실 전면과 부엌 앞면에 있었던 회벽에 그려져 있던 이 그림은 소, 닭, 개, 돼지를 화목한 가족으로 묘사했다.
장 화백은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부인의 초상인 '진진묘(眞眞妙)'다. '진진묘'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으로, 부인의 보이지 않는 성정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외형보다 본질을 나타내는 초상화로서의 성격을 띤다. 이순경 여사는 장 화백이 생전 마지막까지 함께 머물렀던 용인 기흥구 마북리의 고택(古宅)에 거주하고 있다.
이번 개관전시는 오는 8월31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문의 031-8082-4245.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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