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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행시 채용축소…신림동 고시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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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시험 다가오는데...술자리서 '한숨' 마시며 앞날 걱정

신림동 고시촌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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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다."

21일 오후 7시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인근 식당. 4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이준호(29)씨는 무거운 책을 잔뜩 넣은 가방을 식당 의자에 올려놓은 후 한 숨을 푹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내년부터 행시 채용인원이 대폭 축소된다는 소식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정고시 공무직 채용(5급 공채) 축소 발언 이후 신림동 고시촌의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았다. 벌써부터 시험을 포기하는 수험생들이 있는가 하면 불안한 마음에 시험 급수를 낮춰 응시하려는 수험생들도 늘고 있다.

고시촌 일대 A학원 원장 백모(52)씨는 "이번주에 유난히 행시 1차 시험인 피셋(PSAT) 기본강의 수업의 환불을 요구하는 수험생이 많았다"며 "아마 월요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학원에서 행정법을 수강한다는 양홍철(24)씨는 "학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은 맞다"며 "올해 휴학하고 제대로 해보려고 신림에 왔는데 다시 복학해야 하나 고민중이다"고 말했다.

건너편에 있는 B고시학원에 들어서자 상담실 문에 '상담중'이라는 문패가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학원 원장 및 합격생들과 상담을 하려는 수험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상담실 문을 하나 둘 빠져나오는 수험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지난해 제57회 행정고시(일반행정)에 합격해 현재 연수를 받고 있는 유모(29ㆍ여)씨는 "대통령의 발언 이전에는 시험 일정이나 답안 작성하는 요령 등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상담내용은 전부 채용 축소에 관한 고민들이다"고 설명했다.
학원 강의를 마치고 저녁에 하는 스터디 모임도 흐지부지되거나 '붕 떠 있는' 상황이다. 7월1일~5일로 예정된 행정고시 일반행정분야 2차시험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모여서 잡담만 늘어놓거나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수험생 구보라(29)씨는 "요즘 스터디에 가면 전부 신세 한탄만 늘어놓게 돼 어제부로 잠시 스터디를 중지하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21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 학원가에 '행정고시 축소 및 폐지 반대 서명운동' 용지가 붙어있다.

21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 학원가에 '행정고시 축소 및 폐지 반대 서명운동' 용지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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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신림동 일대의 베리타스 학원, 한림법학원, 고시촌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서점과 법문서적 등의 광고판에는 '5급 공채 축소 및 폐지에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서명용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서명란에는 벌써 150여명에 달하는 수험생들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고시촌 학원가에서 7년째 복사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는 권모씨(47)는 "사법고시와 외무고시가 폐지돼 신림동에 행시 준비생들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다 빠져나갈 판"이라고 푸념했다.

인터넷 카페에서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15만명의 회원이 가입된 '행정고시 사랑' 카페의 벼룩시장 게시판에는 교재, 인터넷 강의, 독서실 이용권 등을 양도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100여건 이상씩 올라오고 있다. 이밖에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 "아들 행시합격만 바라보고 돈 부쳐주시는 부모님 생각에 눈물난다", "현재 서명운동 진행 중인데 동참해 달라"라는 글도 꾸준히 게재되고 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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