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상담실 안에서나 조용히 오갈법한 이 은밀한 단어가 요즘 화두다. 세월호 침몰 충격파가 가시기도 전에 터진 서울메트로 지하철 추돌사고의 원인으로 '안전불감증'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 지하철 사고의 원인은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센터가 열차에서 발생하는 이상 징후들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른 증상들이 발생하고 점점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화를 키운 것이다. 안전 불감증이라고 하기보다 위험 불감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보는 이유다.
이런 불감증은 조직의 '오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의 성과와 기록들에 따라 평소 해왔던 관행대로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무력함이 사고를 부르는 것이다.
세월호와 지하철 사고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 현장에서의 화재나 건설사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 등은 올 들어서도 수십차례 발생했다. 현장근로자들이나 주민들은 공사현장의 위험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히 달라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정부는 현재 사고가 생겼으니 원인을 찾고 책임자를 징계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원인은 매번 동일하다. 절차를 무시하고, 검사를 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갔던 관행들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경미한 사고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전조(前兆)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것도 대형사고를 키운 셈이 됐다.
불감증은 현대의학에서 정신상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통해 원인과 증상의 정도를 파악하고 심리학적 측면에서 치료 방법을 찾는다.
대형재난 사고를 일으키는 '위험 불감증'도 똑같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처벌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유를 찾아냈으니 관리 시스템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이 집단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곳곳의 관리 시스템을 점검해 허술한 빈틈을 메우고, 관리 인력들에 대해서는 정신적 재무장을 시켜야 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도 지금까지 만연해 있던 불감증을 떨쳐 내기 위해 나쁜 관습과 관행을 바로 잡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또 다시 아픈 기억을 잃어버리고 망각의 늪으로 빠져 든다면 대형 재난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불감증은 언제든지 다시 돋아 날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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