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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곳없는 흡연족들…숨박꼭질 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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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안팎 모두 '금연구역'…인근 산·주차장 골목 숨어서 흡연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희뿌연 담배 연기가 골목 안을 가득 메웠다. 미세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16일 오전 여의도 증권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어 담배를 태우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학교 수업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몰래 담배를 피우는 중ㆍ고등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골목 가득 메운 담배연기와 미세먼지가 합쳐져 시야가 더욱 좁아진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곳곳에 설치된 '금연구역' 표지판은 무용지물이다.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흡연욕구를 참아왔던 애연가들은 연거푸 담배를 태우며 갈증을 달랬다.

'흡연족'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부터 전국의 공중이용시설에서 금연구역이 전면 시행되면서 흡연가들이 마음 놓고 담배를 태울 장소가 줄어든 탓이다. 한 때 흡연실을 방불케했던 여의도공원 앞에 큰 길은 담배연기가 사라진 대신 오가는 사람이 뜸한 증권가 뒷골목은 흡연실로 변했다. 흡연족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상사의 눈을 피해 근무시간 틈틈이 건물 밖까지 나와야 하는 데다 행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 탓이다.
◆"장거리 비행기 타는 기분으로 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박모 이사는 최근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기분으로 출근을 한다. 20년째 애연가인 그는 출근 후에는 담배를 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만큼 업무 중에는 담배를 입에 물지 않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인의 눈치가 보여 집안에서는 태울 수 없다. 퇴근 후 아파트에 들어서기 전에 태우는 것이 하루 중 유일한 낙이다. 박 이사는 "대부분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태울 곳이 없다"면서 "끊어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 담배를 태우고 싶어도 참아야지 별수 있느냐"고 말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조모씨(40)도 흡연을 참는다. 담배를 태우기 위해선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 데다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상사가 신경 쓰이는 탓이다. 회사에선 조씨가 흡연가인지조차 모른다. 조씨는 "하루 반갑 정도 태우는데 모두 퇴근 후에 몰아 태운다"면서 "회사에서도 금연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드러내놓고 태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더욱 작아지는 '애연가'= 흡연족은 비를 싫어한다. 그나마 날씨가 맑으면 건물 밖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지만 비가 내리면 흡연할 장소는 더욱 없다. 선물 투자사에 근무하는 윤모씨(38)는 "비가 오는 날이면 회사 건물 지하의 처마 밑에서 담배를 태운다"면서 "그마저도 사람이 많을 때는 우산 쓰고 나와서 태우는데 그럴 때가 제일 싫다"고 말했다. S병원에 근무하는 임모 팀장(51)은 담배를 태우기 위해 건물 인근 산으로 간다. 병원 건물 자체가 금연구역인 만큼 건물 주변에서도 흡연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종합병원의 성 모 실장은 금연구역을 벗어나기 위해 20분이나 도보여행을 떠나야 한다.
금연구역 지정이 확대되면서 건물 주자창이나 행인이 없는 골목에서 숨어서 태우는 애연가들도 종종 목격된다. 하지만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는 직장인들도 많다. 여의도 한 증권회사 앞에서 만난 양모씨(38)는 "금연구역 표지만 붙어있을 뿐 대부분이 이 곳에서 담배를 태운다"면서 "여기서도 못 태우면 어디로 가냐"고 토로했다. 이 건물 앞에는 증권사에서 자체 제작한 금연 안내 표지판이 세워졌다. 양씨는 "흡연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화단 쪽을 보고 연기를 뿜는다"고 말했다.

◆금연구역 확대되도 금연 시도는 줄어 =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표한 '2013년 지역건강통계'에 따르면 현재 남자 흡연율은 45.8%로 일년 전 46.4%에서 조금 줄었다. 하지만 한 달 안에 금연을 실천하겠다는 흡연자의 금연시도율은 2012년 6.1%에서 지난해 5.4%로 줄었다. 건물 10층의 사무실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와야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여전히 담배를 태운다는 것이다. 27년 동안 담배를 태웠다는 금융회사 직원 정모씨(47)는 "금연법이 시행된 이후 매일 담배를 태우러 (건물 밖으로)내려온다"면서 "이제는 일상이라 불편함을 못느낀다"고 말했다.

IFC몰 인근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40)는 매일 근무 중 세 차례 흡연 여행을 떠난다. 사무실은 건물 19층. IFC몰 인근에 설치된 흡연구역까지 내려오는 데 5분 이상이 걸린다. 이씨는 한번 내려올 때마다 담배를 2대씩 태운다. 금연클리닉에 다닌다는 그는 "담배를 끊어야지 생각은 하는데 못 끊겠다"면서 "흡연구역까지 가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다"고 말했다.

담배값 인상도 애연가들의 흡연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H증권의 윤모씨(38)는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에게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담배값이 저렴하다. 담배값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계속 태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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