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 법안은 유럽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EU는 새 유럽의회가 들어서기 전 은행연합 법안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유럽의회가 새로 들어서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반(反)유로 정당들이 유럽의회를 장악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 재무장관 SRM 양보안 내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은 SRM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은행연합 방안의 신뢰도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EU 재무장관들은 11일 이틀간의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어떻게든 유럽의회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양보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협상에 관여한 많은 이들이 의회와의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FT는 전했다. 아울러 유럽의회는 여전히 요구안을 거의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의회는 EU 집행위원회가 부실 은행의 청산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EU 각 회원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장관들은 또 SRM을 지원하기 위한 550억유로 규모의 정리펀드를 마련하는 기한도 10년에서 8년으로 2년 줄였다.
하지만 유럽의회는 애초 은행연합 출범 때부터 550억유로 기금을 모두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 안정적인 정리펀드 운영을 위해 정부가 보증하는 신용공여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재무장관들은 정리펀드 공동 보증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진전을 이뤄내지 못 했다. 공동 보증은 정리펀드 기금이 완전히 마련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정리펀드가 은행들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유럽의회는 여전히 강경 입장= 미셸 바니에르 EU 금융 담당 집행위원은 EU 재무장관 회의와 관련해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유럽의회와 EU 각 국간 견해차가 여전히 매우 크다"고 말했다.
샤론 바울스 유럽의회 경제통화 담당 위원장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견해차를 좁힐 가까워질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단지 몇 가지 사항을 바꾸기 위해 협상을 길게 끌고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울스는 "빠른 진전보다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잘못되는 것보다는 아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EU 재무장관 측에서도 추가 양보안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이 정리펀드 기금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이상 양보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1일 회의에서 "유럽의회가 더 크게 움직여야만 한다"며 의회의 양보를 촉구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결론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규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들은 독일은 양보하기보다는 차라리 협상을 미루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EU 순회의장국인 그리스의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재무장관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11일 유럽의회 관계자들과 SRM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시일이 촉박한만큼 관계자들은 다음 주 SRM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EU 재무장관들이 한 번 더 모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20~21일에는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그 이전에는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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