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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빅토르 안과 인숙 부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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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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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는 15일(이하 한국시간) 생애 네 번째 금메달을 땄다.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1000m 결승을 1위로 골인했다. 대형 러시아 국기를 들고 그는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얼음 위를 천천히 돌았다. 분명 익숙하지 않아 어색한 장면이었다. 보는 이들마다 속마음은 제각각이었겠지만.

8일 새벽 소치 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렸을 때 적잖은 스포츠팬들은 안현수와 한국 선수의 맞대결을 떠올렸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안현수가 한국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면, 그때는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도 했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글쓴이는 안현수를 보면서 오래전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1987년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39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다. 이듬해 서울 올림픽에서 탁구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전 세계 탁구인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진행됐다. 단체전에 이어 올림픽 정식 종목인 남녀 단식과 복식이 포함된 개인전이 시작됐을 때 각국 출전 선수들의 명단을 살펴보다 미국 선수들 가운데 어디에서인가 본 듯한 이름을 발견했다. 인숙 부샨(Insook Bhushan), 성(姓)은 낯설었지만 이름은 분명히 한국인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인숙’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숙 부샨은 1973년 사라예보(당시 유고슬라비아, 오늘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선 한국 선수단 가운데 한 명인 나인숙이었다.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 만했다. 스포츠팬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 멤버는 정현숙과 이에리사, 박미라, 김순옥 그리고 나인숙이었다.

한국은 단체전에 정현숙과 이에리사를 단식, 이에리사와 박미라를 복식에 기용하는 전략을 썼다. 그래서 나인숙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회에서 주장으로서 한 몫을 했고, 1971년 나고야에서 벌어진 제31회 대회에서는 정현숙, 이에리사와 함께 단체전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글쓴이가 스포츠팬이었을 때 한국 선수 나인숙이 14년 뒤 기자가 된 글쓴이 앞에 미국 선수 인숙 부샨이 돼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나인숙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공상정(왼쪽)과 조해리[사진=정재훈 기자]

공상정(왼쪽)과 조해리[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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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대회 직후인 1974년 나인숙은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건축가인 세카르 부샨과 결혼했고 1980년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인숙 부샨으로 바뀐 그는 1976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탁구선수권대회 단식과 복식에서 각각 11차례, 혼합복식에서 8차례 우승했다. 1977년에는 전 세계 선수들이 출전하는 US오픈 단식 정상에 올랐다.

1988년 36살의 인숙 부샨은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하계올림픽에 미국 선수단 527명 가운데 한 명으로 나섰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48강이 겨룬 단식 조별리그 C조에서 2승 3패, 조 4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1~3위는 중국이 휩쓸었다. 서울 올림픽 이후 대만으로 귀화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단식 은메달리스트가 되는 천징, 리후이펀,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의 탁구 선수 안재형과 결혼하는 자오즈민 등이다. 한국의 양영자-현정화 조가 중국의 천징-자오즈민 조를 2-1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복식에서인숙 부샨은 다이애나 지와 짝을 이뤄 분전했으나 조별 리그 B조에서 1승 5패, 조 6위로 8강에 나서지 못했다.

인숙 부샨의 도전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마흔 살의 나이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다시 나섰다. 64강이 겨룬 단식 조별 리그 A조에서 그는 이 대회 우승자인 덩야핑(중국)에게 0-2로 졌을 뿐 2승을 거두면서 노장 투혼을 발휘했다. 이 대회 이후 ‘탁구 마녀’로 불리게 되는 덩야핑은 당시 19살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인숙 부샨은 성조기를 달고 6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고 3차례 범태평양경기대회에 나서 금메달 8개와 은메달 1개를 미국에 안겼다. 미국 탁구 발전 크게 이바지한 인숙 부샨은 1993년 미국 ‘탁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에도 귀화 선수가 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릴레이 멤버인 공상정이다. 대만계 화교 3세인 공샹찡은 2011년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에서 체육 분야 우수 인재로 뽑혀 특별 귀화 허가를 받았다. 꿈에 그리던 태극 마크를 달고 이번 대회에 나서게 됐다. 국적을 되찾긴 했지만 여자 쇼트트랙의 최민경은 프랑스 대표 선수로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여자 농구 하은주는 일본 리그 샹송화장품에서 뛰었다. 여자 양궁 엄혜련은 일본 국가 대표 선수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름은 빅토르지만 성(姓)은 여전히 안(安)인 안현수는 모든 귀화 선수가 그렇듯이 누가 뭐래도 한국인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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