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에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처음으로 테이퍼링을 결정했다. 그동안 FRB는 벤 버냉키 의장의 주도로 3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통해 천문학적인 달러를 시장에 투입하며 경기 부양을 위한 사투를 벌였다. 그런 FRB가 이제 돈 줄 죄기에 나선 것이다.
양적완화가 사상 유례없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불렸던 만큼 테이퍼링의 앞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주말 갑작스럽게 신흥국 통화위기감이 고조되고 선진국의 증시가 연쇄 폭락했던 것은 테이퍼링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경고 신호였던 셈이다.
◆테이퍼링의 구조와 전망= 지난해 말까지 FRB는 3차 양적완화를 통해 매달 850억달러(91조5960억원)의 채권을 매입해왔다. FRB의 발권력을 동원해 미 국채 450억달러어치와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증권(MBS)을 꼬박꼬박 사들였다.
FRB라도 무한정 달러를 찍어서 경기 부양을 할 수는 없다. 유동성 공급의 적정선을 넘기면 자산 거품(버블)이 만들어지고 인플레이션을 자초하게 된다. 사전에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는 다시 공황상태로 빠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FRB는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때마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심해왔다. 결국 지난해 12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FRB는 당장 이달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750억달러로 축소했다. 미 국채와 MBS증권 매입 규모를 각각 50억달러씩 줄이는 방식이다.
28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열리는 1월 FOMC에서도 100억달러 추가 테이퍼링이 유력시된다. 최근의 신흥국 경제의 불안과 미국의 일시적인 고용부진으로 이 같은 결정이 유보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FRB 내부에선 FOMC가 열릴 때마다 100억달러 정도의 테이퍼링을 지속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는 점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제 역풍이 없는 한 FRB는 올해 말까지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완전히 종료할 것으로 보인다.
◆테이퍼링의 후폭풍= FRB가 테이퍼링을 통해 돈 줄을 죄면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저렴했던 자금 조달 비용은 상승하게 된다. 이는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복잡한 연쇄 작용을 일으킬 전망이다.
미국에선 그동안 증시 활황을 이끌었던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 채권 시장은 직접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채권시장의 큰 손이었던 FRB가 빠지면서 채권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상승하게 된다. 그나마 견실한 경제회복세를 보이는 미국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테이퍼링의 뇌관은 미국 외부, 특히 신흥국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흥국 경제의 안정성과 성장률이 미국 등 선진국에 오히려 못 미치면서 이곳에 흘러들었던 달러 자금이 대거 이탈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금은 다시 미국 증시나 채권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경제전문채널 CNBC가 신흥국을 빠져나온 자금이 장기적으론 미국 시장을 떠받칠 것이란 견해를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테이퍼링으로 인한 자금 흐름 변화가 어떤 방향과 강도로 나타날지 가늠할 수 없는 단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테이퍼링이 글로벌 경제의 투자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을 촉발시킬 것이란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변동성이 글로벌 경제를 다시 침체 늪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 한 해 글로벌 경제는 테이퍼링이란 화두에서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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