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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매거진] 한국영화 2억 관객의 시대, 영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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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르네상스일까 새로운 빙하기의 전야일까?'

[스투매거진] 한국영화 2억 관객의 시대, 영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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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장훈 PD
한국 영화는 2013년 상반기 관객 수 사상 최고치인 5,556만 명을 기록하고 하반기에도 흥행 돌풍을 이어가며 3분기에만 역대 최고인 4,325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11월까지의 누적 관객 수가 1억1547만 명에 달하며 12월에도 바통을 이어받을 우리 영화들의 선전이 예상되어 한국영화사상 초유의 2억 관객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 영화의 신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작품들을 보면 연초 ‘7번방의 선물’(1,271만 명)과 ‘베를린’(716만 명)의 흥행가도를 이어 6월 ‘은밀하게 위대하게’(696만 명), 7월 ‘감시자들’(551만 명), 8월 ‘더 테러 라이브’(558만 명), ‘설국열차’(934만 명), ‘숨바꼭질’(560만 명)이 한국 영화 최고의 해를 예감케 했고 추석시즌의 ‘관상’(913만 명)에 이어 12월 중순까지 ‘친구2’가 296만 명, ‘소원’이 2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뒷심을 발휘해 마지막 주자인 ‘집으로 가는 길’, ‘열한시’, ‘결혼전야’ 등의 작품에 피날레를 넘긴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선전은 갈수록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흥행을 보장하는 코미디, 액션 장르를 넘어서 그동안 한국 영화로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던 스릴러, SF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흥행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장르라는 형식보다는 내용 면에서 유독 지난해의 흥행 영화들이 보이는 두 가지의 특징에 주목해 볼 수 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거나, 이로 인해 그 환경이나 시스템에 맞서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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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층이라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이 국가나 권력의 힘에 의해 개인의 주권을 잃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7번방의 선물’, ‘감기’, ‘관상’ 등의 영화들이 각각의 장르가 다름에도 관객들의 관심을 모은 공통분모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베를린’,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등의 영화는 부패한 조직이나 결함을 방치하고 있는 시스템에 불응하고 격렬한 저항을 통해 시스템을 전복시키고 어긋난 자아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단 여섯 편의 영화가 무려 5천만여 명의 관객을 모아 한국영화 신 르네상스 시대의 20%를 담보하는 역할을 해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묵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여섯 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영화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설국열차’이다. 올해 한국영화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중심축이 되었던 3분기 실적의 선봉장이 ‘설국열차’였다는 사실 또한 그 인기의 반증인 셈이다.

그렇다면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왜 ‘설국열차’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물론 이 영화에 대한 평이 호평일색인 것은 아니다.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가 줄을 잇고 있지만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거나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다. 바로 이 논쟁의 모서리 끝에 서있는 ‘설국열차’의 감독이 초정밀 디테일로 유명한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더 놀랍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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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구상에서부터 제작 완료에 이르기까지 10년의 세월로 공들여진 한국영화 최대의 프로젝트(제작비 4천만 달러(한화 약 450억 원)). 원작이 될 프랑스 만화가 영화로 풀어내기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고답스럽다는 우려를 깨고 국내외 주연급 배우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던 봉준호 감독의 치밀하고 섬세한 각색. 정식 개봉 전에, 완성본이 아닌 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 167개국에 선판매되며 이미 제작비의 절반을 거두었을 정도로 외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작품인 ‘설국열차’.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우리 관객들은 대작의 향기가 그리웠던 것일까? 국위를 선양한 작품의 성황에 답례를 보낸 것일까? 그런데 참으로 요상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이 고등학교 국어시간을 연상시키듯 각각의 장면들과 토시 하나하나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의미를 분해하고 재조립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갑론을박, 제 눈에 안경이다. 물론 내 눈도 추가.

뚜껑을 열어보니 SF영화라던 이 영화의 유일한 배경인 열차는 ‘은하철도999’ 처럼 우주를 달리거나 컴퓨터 제어에 의한 전자동 시스템이든가 하다못해 SF스러운 슈트하나 보이질 않고 그저 2031년도의 설국을 뚫고 숨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정도로 지구는 온난화의 정도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살포된 냉매 ‘CW-7’이 오히려 지구를 얼어붙게 만드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는 배경설정으로 주변은 눈이 부시도록 하얀 설경뿐이고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꼬리칸은 미래 시대라고는 보기 힘든 행색의 난민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커티스는 커티스답고 윌포드는 역시 윌포드스러우며, 길리엄, 메이슨…. 각각의 영화에서 차용해온 듯한 캐릭터들과 장치들은 나름 대작 SF영화의 미장센과 상상력에 주린 허파를 꽉꽉 채워주는 캐릭터들을 감상하며 서서히 극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누리려 했는데 그런 나의 뒷통수를 후려치듯 빠른 전개로 이어지는 권선징악의 구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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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었던 봉테일의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직설화법을 쓸 줄이야…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몰입은 깨진지 오래고 장면마다 혹시 다른 은유나 비유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하는 깊이를 곱씹다보니 나는 어느새 열차에서 내려 팔짱을 끼고 열차안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이… 이것은 연극이다.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서사극(敍事劇)’… 이었다. 일반적인 연극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궁극적인 결말을 향해 몰입되어지는 방식의 ‘닫힌 연극’이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며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을 향한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고, 마치 무대 위의 상황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 연출자가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법.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관객과 만나서 혼연일체를 이루는 최단 거리인 셈이다.

하지만 베르톨트 브레히트(극작가1898~1956)는 이것이 진실을 왜곡하여 관객을 현혹시키는 ‘마약 효과’라고 규정하고, 무대 위의 사건을 관객 앞에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누군가(사람이 아닐지라도)가 개입하여 무대 위의 사건이 ‘실제’가 아닌 ‘연극’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서사극’ 형식을 도입하였다. 물론 세부적으로 ‘서사극’의 표현방식과 ‘설국열차’의 그것을 동일시 한다는 것은 지나친 억지가 될 수 있지만 의도적인 면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봉테일이라면 가능한 시도. 흥행성과 대중적 평론을 무시할 수 없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 이런 모험을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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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관점이 맞는다면 봉준호 감독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열차라는 연극 무대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비주얼과 사운드에 취해 영화 속으로 단말마처럼 빠져들어서 한증막 사우나라도 다녀온 듯 개운하게 극장문을 나서기를 금지하고, 생경한 눈초리로 사유하고 사유하되 오늘의 이 불친절한 경험을 잊지 말고 극장문을 나설 때나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서도 사유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이 이성적으로 무엇을 생각해주길 바랐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흠흠… 이성적으로 볼 때, 지구 온난화의 주범도 인류이고 그 지구를 다시 자신들에게 편한 곳으로 만들려다 새로운 빙하기로 최악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도 인류이며 그것은 그들 중 1% 이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급들의 선택일 것이다. 물론 영화를 봤건 안 봤건 다 아는 얘기거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논점은,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관객들은 봉준호가 써놓은 한 편의 시를 밑줄 쫙쫙 그어가며 자 여기는 이런 의미를 비유한 것이고 어쩌고 하며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어떤 썩을 놈이 내린 결정인지 온난화를 없애보겠다고 결국 인류를 거의 전멸로 몰아가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런 날벼락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목적지가 없는 열차에 오르게 된다. 더 엄중한 사실은 열차에 오른 커티스 무리들 역시 그 열차에 오르기 위해 무수한 경쟁자들을 짓밟고 올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죄를 의미하는 것일까? 똑같은 원죄를 가진 자들의 세계에서 다시 선과 악이 나뉘는 상황, 그쯤 되면 이성적인 관객들은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아,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탐욕하며 무너지는도다. 이것이 반복되고 반복될 뿐이니 우리는 더 이상의 희망을 이 땅에서 취할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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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몰입보다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가슴이 찢어지던 기억에 젖는다. 모든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되는 것이고 한없이 반복되는 존재는 그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인가…. 남궁민수가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은 인류마저 멸종시키면서 살린 두 아이 요나와 토미는 또 한세상 생육하고 번성하다 탐욕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지구의 원래 주인인 것처럼 그 둘을 보며 지나가던 북극곰(?)이 있었으니…. “니들이 그렇지 뭐, 그게 바로 니들의 운명인 거야”라는 대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정말 인류에게 무언가든 리셋 할 수 있다는 신뢰가 가당한 것일는지. 이 가슴을 꽉 차고 오르는 돌덩이를 안고 나 역시 ‘서사극’의 기법을 써서 독자들의 몰입을 끊고 열차에서 내려 보면, 이 세기말 같은 대한민국의 오늘이 더욱 덜컹거리는 열차 안 같다.

“새해가 올까, 올해가 정말 갈까, 붙잡아야 할까, 등 떠밀어 보내야할까?” 2013년은 ‘테크놀로지가 담은 인문학’이랍시는 스마트폰 감옥에 갇힌 듯하다. 변기에 앉아서도 친절한 스티브잡스님이 인류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마약 대용으로 선물하고 가신 스마트폰의 싸대기를 이쪽저쪽으로 날리다보면 수인번호 2013이 2014로 둔갑하기 전에 누구의 우세승으로 끝날지 모를 대한민국의 개싸움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그에 대한 궁금증이 똥보다 더 마렵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스마트폰 안에서 설날 종갓집 대청마루에 모인 듯 와글와글 시끌벅적한데 웃긴 건 그중에 어른이라는 작자들이 가족들을 편 갈라 줄 세워 놓고 싸움을 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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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 국민들이 종북이네 종박이네 홍어네 과메기네 하며 명찰 달고 싸우게 되었는가? 그 그물코를 좀 더 촘촘히 좁혀 20대, 30대, 40대, 50대…. 여자, 남자, 직장인, 학생…. 그중 어느 부류가 이랬다니 저랬다니 줄 세우기 바쁘다,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물건 팔려고 소비자 성향 분석하고 계신 겐가? 제대로 된 물건이라도 팔든지. 물건 서너 개 팔면서 ‘기호 1번 이 물건은 이래서 하자가 있고’, ‘기호 2번 저 물건은 저래서 불량이고’를 자랑이라고 외치며 마치 고물상 폐업 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국민들 한숨만 나오게 하는 그들은 당최 왜들 이러는 걸까? 그래놓고 ‘청년들이 생각이 없네, 역사의식이 부족하네’, ‘노인들이 수구꼴통이네’, ‘뼈를 깎고 피를 토하며 지켜온 이 나라를 빨갱이 따위에게 내줄 수 없다’며 서로 진흙탕 싸움에 빠져 있는 걸 팔짱끼고 관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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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싸움만 붙여놓고 이 나라의 정치, 사회, 교육, 문화를 통틀어 진정한 어른들은 옥토끼 타고 달나라 구경이라도 가셨단 말인가? 하긴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대부분은 전체의 1%로 안 되는 천재 어르신들이 어느 날 ‘영감’을 받아 싸질러 놓은 작품의 임상실험 대상일 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종이를 싸질러 놓고 가면 인류는 종이가 좋다며 써먹고 팔아먹고 그러다 싸움 나고, 전기라는 걸 던져주고 가면 저기는 밝은데 여기는 왜 어둡냐고 지랄이고, 다이너마이트를 싸질러 놓고 가면 서로 머리통 날리기 바쁘고, 비행기를 싸질러 놓고 가면 비행기 타고 다니며 싸우고, 백신을 떡하니 내놓고 가면 오래 살아서 또 걱정이 늘고 이제는 스마트폰이란 걸 싸질러 놓고 가면서 테크놀로지에 인문학을 곱게 담았으니 니들도 한 번 써보라면 코흘리개나 할배나 할 것 없이 지 자신을 그 장난감 안에 담고, 아니 아예 가둬 놓고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들 밥은 안 챙겨 주는 인간들이 스마트폰 밥 주느라 인생이 참 잘도 간다. 실제 치매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디지털 치매 현상을 유발하고 질병에 대한 방어력을 낮추는 ‘마스크 효과’에 빠지기 쉽고 상호간의 소통을 막아 각종 사회 병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스마트폰의 폐해 등도 덤으로 남기고 가신 천재님들은 묵묵히 경배만 받을 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 그 1%의 뒤를 따르는 소위 엘리트라 불리거나 잔머리 잘 굴려서 자본가라 불리는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또다시 인류를 지들 논밭에서 자라는 농작물쯤으로 여긴다. A라는 비료를 줘서 키우다가 아니, 그건 인체에 해롭다고 갈아엎고 B라는 흙에다 인류를 씨뿌려 놓고는 사용료를 내라며 신용불량감자로 만들어버린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에 미사일 몇 방 갈기거나 자기 집 곳간인양 은행에서 마구 돈을 찍어내는 일쯤은 예사로 안다. 인류 평화를 위해 만든 올림픽 정신은 간 데 없이 전 세계 스포츠가 자본의 배설물을 담는 똥지게가 되고 문화예술은 순수와는 거리가 먼 낯 뜨거운 토플리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안방극장의 주인이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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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리의 고삐를 쥐고 계신 엘리트들과 사장님들께서 어련히 알아서 배당을 해주시지 않았겠나? 우리 세대야 고삐 흔드시는 대로 따라가면 단백질 블록이라도 받아먹을 테고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책 대신 공을 쥐어주거나 노래와 춤을 가르치면 된다. 그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니까. 미래에는 수백억의 잭팟을 터뜨려줄, 그 역사의식은 없을지 모르지만 공 잘치고 잘 달리는, 방송규격에 맞는 손질 잘된 외모를 하고 시일야방성대곡 하듯 사랑이 떠나간 아픔에 온몸으로 절규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있으니까. 우리의 미래들이 종북, 종박을 논하고 친일, 독재를 논하며 악다구니를 부리든 말든 우리는 전자발찌를 차더라도 침 질질 흘리며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왜냐고? 다 우리 스스로 잘 개어 놓은 진흙탕에서 놀고 있는 거니까.

그 옛날 나라를 구하셨다는 어느 혁명가의 유지를 받들어 열심히 집 앞을 쓸고 마을길을 닦고 허기는 기름때로 때우고 ‘그래 너 하나만 배불리 잘 살아라’며 논 팔아 소 팔아 일류라는 대학 보냈더니 생전 국영수 옷고름이나 풀던 아이들이 어느덧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아 대중을 소로 보는지 농작물로 보는지 정치한답시고 개싸움 하고 예술 한답시고 안방극장에 수많은 여신을 생산하고 더할 나위 없는 복근을 다비드상처럼 빚어내신다.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나 ‘안녕들 하십니까?’를 외치던 학생들이나 출산장려에 힘입어 아이들을 키우다가 유치원에 낙방해서 우울증에 살만 쪄버린 아줌마들이나 가족을 사랑하지만 2차도 마다않는 남편들도 결국엔 안방극장, 아니면 스마트폰을 붙들고 앉아 추신수 선수 몇 십억 하는 홈런 한 방에 스트레스 풀고 제국기업 제국고 사회배려자들 로맨스에 가슴이 벌렁거린다. 대체 전자발찌는 누가 누구에게 채워야 하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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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보고 있는 설국열차, 열차가 거의 북극곰을 만나는 장면에 왔네. 근데 왜 이런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님과 박찬욱 제작자님은 굳이 CJ E&M과 손을 잡으셨을까? 꼭 이 영화만은 흥행시켜서 많은 사람이 보게 한 후에 세상이 조금 바뀌면 그때 모은 돈으로 후배 영화인들과 다양성 영화들을 위해서도 관심 좀 가져주시겠지? 새로운 빙하기에 두 분만 내리실 생각은 아니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싶으니까.

설국열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이번에는 남궁민수가 자신의 딸 요나를 데리고 내렸다.
저 쪽에 북극곰 한 쌍이 지나간다.
남궁민수가 요나에게 사과를 한다.
“요나야 미안하다. 이런 세상에 너를 낳아서 미안하고, 종북을 종북이라고 욕해서 미안하고, 종박을 종박이라고 욕해서 미안하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 지금은 서로의 잘못을 탐지해내는 기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잘못을 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필요한 때야. 너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배만 채우고 집만 장만하면 다 행복해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지. 먹고 자고 입는 것보다 사람을 먼저 배려할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고 그게 상식이었던 때가 있었단다. 아빠가 먼저 사과할게. 이제 시작되는 새로운 세상에는 내 가족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그 잘못이 또한 나의 잘못 때문이기도 함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게 상식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우린 모두 다 한 가족이었으니까.”
요나가 대답한다. “응, 아빠를 믿어.”

둘이 얼어붙은 눈길을 걷는다. 남궁민수가 북극곰을 보더니 갑자기 얼음송곳을 집어든다. 북극곰들 황당하지만 도망친다. 잠시 후 라이터로 북극곰 시체에 불을 지피는 남궁민수.
“이거 먹고 따듯하게 해줄게.”
북극곰을 다 먹어치우고 이글루를 짓기 시작하는 남궁민수.
가장 추운 곳에서 가장 차가운 것을 이용하여 온기를 유지하는 이글루.

멋지다. 철학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남궁민수와 요나는 혼자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 거짓기억 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 1990년대 초반에 학계에 새로 보고된 거짓기억증후군은 정신치료나 상담을 받던 사람들이 실제로 겪지 않았던 일들을 자신의 경험인 것처럼 기억해내게 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남궁민수와 요나는…
인류의 마지막이 될 것인가?
요나와 토미였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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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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