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차두리는 현역 선수 가운데 한국 축구의 영광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한 인물 중 하나다.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스타를 아버지로 둔 행운부터 시작해, 대학생(고려대) 신분이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했다. 이후 독일로 날아가 유럽 무대를 누볐고, 2010년 남아공에선 원정 월드컵 16강에도 공헌했다. 이듬해에는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의 감격도 누렸다.
그런 그가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지도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잔뼈 굵은 베테랑에게도 프로 데뷔 10년 만에 처음 경험한 K리그 무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의외의 면모를 보여준 수장, 매번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유망주, 챔피언스리그 출전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감탄 속에는 큰 경기를 앞둔 자신감도 녹아있었다.
다양한 질문 속 차두리는 세 번의 감탄사를 내놓았다. 첫 번째 대상은 다름 아닌 최 감독. 지금은 선수와 감독 관계지만, 현역 시절엔 가장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봤던 사이였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 당시엔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8 프랑스월드컵 당시 아버지 차범근 SBS해설위원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최 감독이 간판 골잡이로 활약했던 인연도 있었다.
차두리는 최 감독에 대해 "예전엔 아주 가까웠던 형님이고, 함께 방을 쓰기도 했다"라며 "동료였던 사람이 갑자기 감독님이 되니까 처음엔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웃어보였다. 이어 "지난 6개월이 참 신선했다"라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난끼도 발동했다. 차두리는 "선수 시절엔 참 다혈질이어서 아버지도 걱정을 많이 하신 선수였는데, 지금은 침착하고 넓은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한다"라고 말해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바로 옆 최 감독도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했다.
차두리를 놀라게 한 또 다른 존재는 서울의 유망주들이었다. 그는 "서울에 와서 굉장히 놀란 점 중 하나"라고 운을 띄운 뒤 "젊고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의 상황 대처 능력이 정말 좋다는 것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차두리는 "급박한 상황 변화에도 침착하고 좀처럼 긴장하지도 않는다"라며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과연 저랬을까 싶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ACL 4강전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는 "내일 준결승이 부담스럽고 큰 경기지만, 그런 점에서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잘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신뢰를 드러냈다. 윤일록, 고요한, 고명진, 김주영, 김현성, 박희성 등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었다. 동시에 베테랑 선배들이 뒤에서 받쳐줄테니,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라는 격려를 담고 있기도 했다.
마지막 감탄사는 ACL을 향했다. 셀틱 시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과 유로파리그 본선을 뛰었고, 이번이 첫 경험인 ACL은 어느덧 준결승까지 올랐다. 차두리는 "유럽도 그렇지만 챔피언스리그는 선택받은 팀과 선수만 뛸 수 있는 특별한 무대"라며 "이런 대회에서 예선도 아닌 최종 네 팀에 들었다는 건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감격해했다.
차두리는 "여기는 끝이 아닌 결승으로 향하는 계단"이라며 "준결승 두 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펼친 뒤 결승에 올라 한국 축구가 아시아에서 살아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서로 다른 색깔의 여러 나라 축구와 맞붙는다는 것이 즐겁다"라며 "이란은 기술은 좀 떨어져도 파워풀한 축구를 펼치고, 그런 상대를 맞아 우리 선수들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맞을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동시에 자신감도 내비쳤다. 4강전 상대인 에스테그랄은 이란 현역 국가대표를 다수 보유한 팀.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가 지난 이란과 A매치 중계를 하셨는데, 이란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씀해주셨다"라며 "물론 상대를 존중하고 좋은 팀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만의 색깔과 장점을 잘 발휘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전성호 기자 spree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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