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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히딩크식 '마이 웨이' 선언

최종수정 2013.08.07 12:31 기사입력 2013.08.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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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10주년 기념식 당시 포옹을 나누는 거스 히딩크 감독(가운데)와 홍명보 감독(오른쪽) [사진=정재훈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10주년 기념식 당시 포옹을 나누는 거스 히딩크 감독(가운데)와 홍명보 감독(오른쪽) [사진=정재훈 기자]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신예들을 기용하며 실험 중이다."
"언제까지 실험만 할 것인가?"
"모든 건 월드컵을 향한 준비 과정이다. 뜻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꾹 참아주길 바란다."

2001년 9월 한국-나이지리아 평가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가진 거스 히딩크 감독과 취재진의 대화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홍명보·윤정환 등 베테랑 대신 이천수·최태욱·김남일 등 신예들을 대거 중용했다. 수비 구성은 포백과 스리백 사이를 넘나들었다. 포지션 파괴도 단행했다. 황선홍-송종국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최태욱을 측면 수비로 기용했다. 지금 보면 큰 무리 없는 시도지만, 당시만 해도 이를 향한 시선은 꽤 차가웠다.

잦은 테스트에 성적은 들쭉날쭉했다. 특히 프랑스와 체코에 각각 0-5로 패하면서 히딩크 감독에겐 '오대영'이란 비아냥이 섞인 별명까지 붙었다. 심지어 한 국회위원은 국정감사에서 "감독의 지도력이 의심된다"며 "필립 트루시에 일본 감독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왔는데 지금까지 한 게 뭐냐"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히딩크 감독은 요지부동이었다. 신념을 꺾지 않았다.

9개월 뒤, 히딩크 감독은 숱한 실험의 결실인 23명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섰다. 그는 자신 있게 선언했다.
"한국 축구는 목표했던 수준에 도달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

결과는 월드컵 4강이란 전대미문의 금자탑이었다. 비난은 찬사로 바뀌었고, '고집'이라 불리던 그만의 방식은 '마이 웨이(My way)'란 이름으로 재평가됐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시계를 다시 앞으로 돌려 2013년 8월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대표팀 지휘봉은 11년 전 실험 속 당사자였던 홍명보 감독이 잡고 있다. 그런 그 역시 '마이 웨이'를 선언했다.

홍 감독은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내가 언제 첫 승을 거둘지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 눈은 2014년 6월 브라질 월드컵만을 향한다"며 "브라질 본선에서 첫 승이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5월까지 모든 계획을 짜뒀다"며 "그 때까지 명확한 원칙을 갖고 모든 선수들을 계속 경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계획한 것을 흔들림 없이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야 강팀이 된다"고 덧붙였다. 어휘의 선택과 문장의 구조가 다를 뿐, 발언의 본질은 예전 히딩크 감독의 그것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실제로 홍 감독은 대표팀 취임 후 줄곧 옥석 가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달 말 치른 동아시안컵에선 K리그-J리그의 젊은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다. 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페루와의 평가전도 다르지 않다. 동아시안컵을 2무1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마감했지만 홍 감독은 페루전을 두고 "또 골을 못 넣을 수 있고, 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눈앞의 성적이 아닌 월드컵 본선이다. 그전까지의 경기는 담금질로 여긴다. 신념을 갖고 끝까지 인내해 최상의 결과물을 내겠다는 각오다. 아주 작은 개선점만 발견할 수 있다면 평가전 패배는 큰 수확이 될 수 있다. 본선에서의 감독 데뷔승을 두고 '최선'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홍 감독의 히딩크식 마이웨이 선언에 믿음을 실어주고픈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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