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판문점 개최 의미는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오전회의가 9일 오전 10시15분 시작돼 11시까지 약 45분간 진행된 뒤 종료됐다. 이날 오후부터는 양측이 파악된 상대방 입장에 대한 내부 검토 등을 거쳐 점심 식사 뒤에 추가 회의 일정을 협의할 예정이다.
9일 정부관계자는 "양측은 이날 오후 수석대표 및 실무대표 접촉을 이어가며 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문제를 계속 조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장소로 정부가 제안한 판문점을 북한이 수용한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이 마지막으로 판문점에서 당국간 회담을 연 것은 지난 2000년 4∼5월 네 차례에 있었던 정상회담 준비접촉과 경호, 통신 등 분야별 실무접촉이다. 이후 군사 당국 간 회담이 열리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북한은 그동안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회담은 군사회담외에 개최를 꺼려해 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논의하는 회담 이후 열린 남북 당국간 회담은 모두 서울과 평양을 오가거나 개성, 금강산, 문산 등의 판문점 이외의 지역에서만 열렸다. 2000년 10월 김용순 당시 당 통일전선부장이 서울에 특사로 방문했을 때도 남측에서 적십자회담을 판문점에서 여는 방안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결국 금강산에서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판문점을 도끼만행사건 등으로 인해 '대결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판문점이 미군이 관리하는 지역으로 이곳에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 문제는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끼만행 사건은 지난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에서 발생했다. 남쪽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 4명으로 이루어진 11명의 장병이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절단 작업을 호위하던 군용트럭에 탑승한 북한군 30여명이 미리 준비한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러 2명의 미군 장교를 죽인 건이다.
한 전직 고위관리는 "북한은 판문점이 남북한의 화해문제를 논의하는 남북 당국간 회담 장소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에 북한이 판문점을 회담 장소로 수용한 것은 파격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판문점이 가지는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은 왕래에만 오랜 시간을 쏟으면서 다른 지역에서 회담을 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한이 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수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회담에 굉장한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