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책임은 회피한 채 특권만 누리는 농협회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나는 비상임이라 업무를 잘 모르고, 한 것이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


2011년 4월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로 기록된 '농협의 전산장애' 당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본인은 '비상임'으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질 일, 다시 말해 '사퇴'를 할 이유가 없다는 해명이었다. 대신 이재관 당시 농협 전무이사가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지난주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최원병 회장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신 회장은 최원병 중앙회장의 지나친 경영 간섭 때문에 사의를 굳혔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경영전략 수립, 인사, 예산, 조직 등에서 모두 (최 회장과)부딪혔다"며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있고,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2005년 중앙회장의 지위가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뀌었지만, 실질적 권한은 상임 시절과 다를바 없다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농협은 매번 "그렇지 않다. 중앙회장은 농협을 대표할 뿐,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해왔다. 언론들도 확실한 물증이 없는 터라 매번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엔 심증이 아닌 물증이 나오자 농협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묵묵부답이다.

한호선, 원철희, 정대근 등 1988년 이후 3명의 농협 회장이 모두 감옥살이를 했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과 얽히면서다. 이 때문에 농협은 2005년 회장직을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꾸는 등 중앙회장의 '힘'을 빼려 노력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변화일 뿐 실질적 권한 축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농업경제, 축산경제, 상호금융 등 농협중앙회 아래 사업별 대표이사를 중앙회장이 본인 입맛대로 앉히는 등 여전히 중앙회장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이들 대표이사들을 뽑는 인사추천위원회를 중앙회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임인 중앙회장이 실질적 돈줄도 쥐고 있다. 농협엔 4조원에 이르는 '조합상호지원자금'이란게 있다. 농협은 전국의 회원조합들에 무이자로 이 자금을 공급한다. 이 자금의 공급이 끊어지면 그날로 무너질 회원조합이 허다하다. 그래서 이 돈은 중앙회장의 '통치자금'으로 불린다. 지역 조합장들이 중앙회장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이유다.

AD

이처럼 인사권, 돈줄 등 대부분의 권한은 여진히 중앙회장에 쏠려 있다. 회장 자리가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책임은 회피한 채 특권만 누리는 자리로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은 자산 300조원(지난 4월말 기준 298조원)에 2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임직원만 2만명에 육박한다. 중앙회 산하에 지역조합이 1163개가 있고 조합원은 250만명에 이른다. 중앙회장이 농협의 설립목적인 '회원조합의 이익과 발전'은 외면한 채 본인 잇속만 챙기려 들면 농협의 앞날은 없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