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소리 내면 찍힌다"…유통업체들 눈치물가
'물가안정' 새정부 코드 맞춰 가격인상 없던 일로
SPC·CJ제일제당·아모레퍼시픽 등 철회·인하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오주연 기자]"이전 정부에서 물가인상에 대해 강도높게 고삐를 죄어왔는데 새 정부 들어서도 달라진 게 없어요. 일단 숨죽이고 있는 게 상책이지만 기업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인 압박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최근 식품업계에서 정부 눈치를 보며 가격인상을 보류하거나 인하하는 등 몸을 사리고 있자 관련업계 관계자가 "밉보여 좋을 건 없다"며 한 한탄이다.
소비재 업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코드 맞추기에 나서고 있다.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물가 안정 의지를 단호하게 피력하자 소비재 업체들이 가격인상을 보류하거나 아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식품, 화장품 등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식품업계 중에서는 원가인상 부담에도 여론압박과 정부눈치에 해를 걸러 가격 인상을 연기해온 SPC그룹이 대표적이다.
SPC그룹 계열 삼립식품은 지난달 일부 제품의 빵값을 올렸지만 가격 인상 보름 만에 이를 전격 철회했다. 잇따른 식품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삼립식품은 지난달 21일 '초코롤케익''48시간 밀크요팡' 등 54종은 800원에서 900원으로, '행복가득 꿀카스테라'' 행복가득 밤맛만쥬' 등 12종은 2600원에서 2800원으로 평균 7.7~12.5% 인상했다. 그러나 5일 이들 가격을 종전 가격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인상 보름여만이다.
삼립식품 관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1.5%에 그치는 등 경영 상황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일부 적자 품목에 대한 가격을 조정했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가 격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헤프닝으로 파리바게뜨도 당분간 가격 조정을 할 수 없게 됐다. 지난 해 정부 눈치보기로 가격인상을 무기한 연기해왔던 파리바게뜨는 올해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삼립식품의 빵가격 철회로 파리바게뜨 역시 가격인상이 불투명하게 됐다.
CJ제일제당은 이달 5일부터 설탕 출고가를 인하했다. 이번 가격 조정으로 하얀 설탕 1㎏은 출고가 1363원에서 1308원으로 4%내렸고 15㎏은 1만7656원에서 1만6597원으로 6% 인하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새 정부의 물가 정책 에 협력하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취임 후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부당한 가격 인상은 막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사실상 식품업계를 두고 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자 이에 뜨끔해 가격인하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가격을 인상하면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며 "숨죽여 자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류는 화장품 업계로 확대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는 일부 라인을 리뉴얼하면서 가격을 사실상 인하했다. 자정백삼젤의 경우 용량은 80ml로 같지만 이번 리뉴얼과 맞춰 가격은 기존 6만5000원에서 5만5000원으로 1만원 인하됐다. 자정수는 6만5000원으로 가격이 동일하지만 대신 용량이 100ml에서 125ml로 늘어 약 20% 인하효과를 낼 수 있게 됐으며 자정수액도 7만원으로 가격은 같지만 용량이 기존 100ml에서 125ml로 늘었다.
수입산 화장품들도 가격인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프랑스 메이크업 브랜드 부르조아는 이달부터 국내 제품 판매가격을 최대 15% 가격 인하한다고 밝혔으며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그룹의 화장품 브랜드 프레쉬도 가격을 최대 20% 이상 인하했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 자외선차단제인 아넷사의 대표 품목 가격을 5000원씩 내렸다.
수입 화장품 업계관계자는 "관세혜택과 환율 등을 고려한 조치"라면서 "국내 고객들의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앞서 대형마트들이 이달 1일부터 사상 최저가 가격할인에 나서면서 박 대통령의 가격인상 발언에 부응했다"면서 "이를 시작으로 편의점들도 라면, 우유 등 일부 생활용품의 가격을 대형마트 수준으로 내리는 등 새 정부 눈치보기식의 가격 할인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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