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최초의 한국인 변호사 꿈꾼다"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10년지기 고교 동창들이 설을 맞아 모였다. 20대 후반 젊은이들이 술자리에서 털어 놓은 고민은 다들 비슷했다. 대기업 면접, 공무원 시험 같은 취업 이야기가 늘 그렇듯 화제에 올랐다. 당현우(29)씨도 그 자리에 있었다. 친구들이 "현우 너는 뭐하고 있냐"고 묻자 그는 "베트남에서 회사 다닌다"고만 말했다. 지난 10년동안 있었던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하기엔 너무 길었다.
당씨는 현재 정수기 회사 코웨이의 베트남 현지 파트너 '카르파(CARPA)'의 호치민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직원 15명을 통솔하는 책임자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컨설턴트 청탁도 종종 받는다. 그가 사투리까지 구분할 정도로 베트남어에 능통한데다 현지 업체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베트남통이기 때문이다.
당씨는 호치민의 부촌인 푸미훙 지역에 있는 40평짜리 고급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월 1000달러에 달하는 집세는 회사가 부담한다. 취업 스트레스로 다크서클 짙게 깔린 얼굴이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이 청년은 해외에서 자신이 갈 길을 찾았다. 당씨는 해병대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20대 시절을 베트남에서 보냈다. 1985년생인 그는 지난 2002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베트남 유학길에 올랐다. 본인은 막연히 일본, 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이라 짐작했지만 대기업 임원이던 아버지는 '베트남'을 추천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지며 유망한 시장이 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베트남에서의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하노이에 있는 외국인 어학교에 다녔지만 난생 처음 배우는 베트남어는 어렵기만 했다. 학습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덥고 습한 날씨에 하숙집 바닥에는 주먹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몇 개월만에 60㎏ 정도였던 몸무게가 43㎏까지 빠졌다. 당씨는 한동안 유학생들과 어울리며 공부는 뒷전으로 미뤘다.
2007년 군대를 제대한 후 다시 베트남에 들어온 당씨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베트남의 매력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인에겐 여전히 '미개척지'라는 점이 그의 도전욕구를 자극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경제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2007년 9월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일류대인 베트남경제대학(NEU)에 입학했다. 학교측이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입학 신청을 거절하자 당씨는 직접 총장을 찾아가 입학을 허가 받았다.
그렇게 한국인 최초로 NEU에서 경제법을 전공하는 법학도가 됐다. 공부는 어려웠고 교우, 교수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쓸 것도 많았다. 당씨는 고립감과 절망이 닥칠 때면 "매번 이번 학기만 넘기자"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4학년을 마칠 때쯤 학교측에서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입학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에 졸업장을 수여한 선례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당씨는 총장을 다시 찾아갔다.
결국 그는 고유번호가 새겨진 정식 졸업장을 받았고 학교측이 한국인 관련 졸업규정을 만들도록 한 장본인이 됐다. 현재 당씨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온 후배들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당씨의 꿈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와 베트남 최초의 한국인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호치민 변호사협회의 회원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협회 등록 절차는 베트남에서 변호사 시험을 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변호사 협회에 등록하면 18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 변호사 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변호사 협회 등록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그는 등록 자격을 갖추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약 1년간 법무법인 로고스의 베트남 지사 인턴으로 근무했으며 법 전문가 양성 기관인 '주디셜 아카데미'도 수료했다. '주디셜 아카데미'는 한국으로 치면 사법연수원과 로스쿨의 중간 성격을 띠는 법 전문가 양성기관이다.
하지만 호치민 변호사 협회는 당씨가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받아들인 선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등록을 거절했다. 당씨는 협회장을 직접 찾아가 외국인은 회원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조항이 없음을 강조했고 결국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잠은 어떻게 자나" 13평 아파트에 6명…강남 '로...
앞으로도 베트남에서 변호사 시험을 무사히 칠 수 있을지, 시험을 치더라도 변호사가 확실히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인이 베트남의 변호사 시험을 본 선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선례가 없다'는 말은 당씨의 도전욕에 불을 지핀다. 이 난관을 극복한다면 당연히 '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베트남은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