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불황에 사랑도 저렴이···초콜릿도 들었다 놨다 수십번
▲밸런타인데이 하루 전인 13일 저녁, 용산 이마트에서 한 여성이 페레로로쉐 매대 앞에서 휴대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개당 가격을 따져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2013년 2월14일 대한민국의 밸런타인데이 풍경
-대형 바구니 제품보다 날개상품 선호
-마트.편의점 매출 신장률 반토막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오주연 기자]"지난해는 직장 동료들한테 5000원짜리 초콜릿을 하나씩 사서 돌렸는데 올해는 안돌릴 수도 없고 해서…. 1000~3000원대 가격의 초콜릿을 구입했어요." 직장인 신민정(31)씨는 14일 직장동료들한테는 낱개로 포장된 초콜릿을 선물하고, 1년 반 사귄 남자친구한테도 1만원대 초콜릿을 선물했다. 지난해 10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직접 수제초콜릿을 만들고 선물까지 사줬지만 올해는 설 연휴 지출이 커 지갑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남자친구한테 줄 선물경비도 대폭 줄이는 판에 동료들한테 1000원짜리라도 돌리는 게 어디냐"며 "요즘에는 '의리초코'도 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는 거리 곳곳에서 대형 초콜릿바구니를 들고 오가는 연인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올해는 이런 풍경들이 많이 사라졌다. 애인한테 줄 초콜릿조차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더 저렴한 것을 찾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불황으로 밸런타인데이 특수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설 연휴가 바로 전 주말에 있어서 소비자들이 연이은 지출에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밸러타인데이 하루 전인 13일 저녁, 용산 이마트는 에스컬레이터 코 앞에 초콜릿을 산처럼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고객들이 오가는 길목에 놓아 눈에 잘 띄게 하려는 전략이 다. 덕분에 퇴근 후 초콜릿을 사가려는 직장 여성들과 학생들로 북적였지만 이들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줄었다. 카트 대신 바구니, 바구니 대신 손에 몇 개씩만 쥐어갈 뿐 대형 초콜릿 바구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형 카트를 끌고 있는게 무색할 정도로 카트 안에는 달랑 초콜릿봉지와 묶음포장된 초콜릿 2~3개만 담아놓는가하면 일부는 바구니도 들지 않은채 980원짜리 개별포장 제품 4~5개를 팔 주춤에 대충 끼워넣었다.
한 여성은 종 모양으로 포장된 페레로로쉐 매대 앞에서 휴대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개당 가격을 따져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10여분간 제품가격에서 초콜릿 갯수를 나눠가며 꼼꼼히 따지더니 "이게 좀 더 싸다"며 집어들었다.
대형마트 직원은 "물가인상 수준 대비 작년보다도 더 저렴하게 팔고 있는데 손님이 20%는 줄었다"면서 "정가 1200원짜리를 950원~980원으로 할인해주고 이것도 6개 묶음으로 사면 4780원으로 또 깎아주는데도 잘 안 팔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대형 바구니제품이나 부피가 큰 과시용 선물세트들이 잘 팔렸는데 올해는 다 개별포장 제품만 찾는다"고 덧붙였다.
기껏 포장된 초콜릿 선물바구니를 다시 풀어놓던 한 직원은 "대형바구니 워낙 수요가 없다보니 고객 요청이 있을 때만 맞춤 포장해주고 있다"며 "좀전에 20대 여성 고객이 요청해서 포장해놨는데 반품해달라고 해서 풀어놓고 있다. 차라리 안팔고 말지 초콜릿을 몇번이나 들었다놨다하는지 모른다"고 투덜댔다.
사정이 이렇자 대형마트들과 편의점들은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초콜릿 매출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역신장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이달 1일부터 12 일까지의 초콜릿 매출 신장률이 전년대비 10%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5.9%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었다.
편의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BGF리테일의 씨유(CU)는 같은 기간동안 전년대비 3.9% 신장에 그쳤다. 편의점 특성상 밸런타인데이 당일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지난 해 같은 기간동안의 매출 신장률이 6.4%였던 것을 상기하면 반토막난 셈이다. 세븐일레븐은 매출이 지난해 대비 1.5% 성장에 그쳤다.
호텔 역시 올해는 밸런타인데이 특수가 더디게 찾아왔다.
여의도에 있는 특1급 호텔은 밸런타인 프로모션 예약률이 90% 찼다. 지난해 같으면 일주일전에 100% 완료돼 자리가 없었지만 올해는 이 정도 예약이 차는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호텔 관계자는 "예약이 다 안찰까봐 조마조마했다"며 "식음료쪽은 밸런타인데이 때 보통 예약이 2주 전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는 설도 앞에 있었기 때문인지 밸런타인데이 사흘 전부터 예약이 들어오기 시작해 발을 동동 굴러야했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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